처음에는 여느 동아리처럼 부원들과 역사 문제에 관해 토론하고, 그 내용을 정리한 홍보용 팻말을 만드는 활동을 했다. 그러던 중 일본군 ‘위안부’를 주제로 이야기 나누게 되었는데,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이 문제가 너무 반인륜적이고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이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소위 ‘생기부(생활기록부)’용 활동이 아니라 진심으로 피해자를 위해 활동하고 싶었다.
처음에는 3명의 부원과 담당 선생님께 배지를 만드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그때 나 스스로도 이 프로젝트의 현실성을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모두 긍정적으로 화답해주었다. 비록 부원은 적었지만 기획, 디자인, 홍보, 예산 관리 등 각자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동아리 선생님께서는 학생인 우리가 하기 어려운 일들을 도맡아 주셨다. 모두의 도움으로 내 상상이 현실이 될 수 있었다.
많은 분의 관심 덕분에 활동 첫해에 꽤 많은 수익금을 모았다. 이 돈을 어디에 기부할지 고민하다가 마산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계신다는 말을 듣고 그분의 집수리 비용으로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수익금을 직접 전달하고 싶어서 우리는 할머니가 계신 병원에 방문했다. 당시 할머니께서 의식이 없다는 소식을 들어 굉장히 마음이 아팠는데, 다행히 우리가 방문한 날 깨어나셔서 눈을 마주보며 배지와 수익금을 전해드릴 수 있었다. 부원 모두 울컥해서 눈가가 발개졌던 기억이 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책으로만 배웠던 내가 역사의 피해자를 직접 마주한 경험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할머니 집이 기울어서 집에서 생활할 수 없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역사가 잊힌다’라는 말이 어떻게 현실로 드러나는지 여실히 알 수 있었다. 화가 나는 동시에 착잡했다. 할머니는 말씀도 잘 못 하셨는데, 하염없이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할머니를 뵙고 나서 우리가 하는 일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확신과 함께 앞으로 나아갈 추동력을 얻었다. 좋은 동시에 슬픈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