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즐거움의 매개체로 볼 수 있고, 누군가는 친교의 수단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중독이라는 오명을 붙일 수도 있습니다. 이는 게임이 주는 의미가 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번엔 관점의 다른 층위에서 게임을 바라보겠습니다. 인류의 역사와 사회 속에서 게임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GAME & INNOVATION’은 ‘혁신의 수단’으로 게임을 바라보고자 합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놀이’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필연적으로 놀이를 즐길 수밖에 없는 인류가 게임으로 어떤 발전을 이루게 되었는지 들어봅니다.
Global CSO 윤송이의 MIT SENSE.nano SYMPOSIUM의 발표문을 옮긴 것입니다. 원문은 여기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링크)
인간은 놀이로 성장한다
인류학자와 발달이론가들은 놀이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놀이는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생존과 직결돼 왔기 때문입니다. 고등 동물과 인간은 미성숙한 근신경계와 행동 양식을 지니고 태어납니다. 이들은 놀이를 통해 삶에 필요한 행동 양식을 배우고 연습하며 성인으로 성장합니다. 놀이가 없다면 생존이라는 일생일대의 과제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것입니다.
어린 동물은 나이가 많은 동물보다 놀이를 더 즐깁니다. 배울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사냥을 통해 먹이를 획득하는 동물은 먹이와 유사한 대상을 쫓고 몰래 접근하면서 노는 반면, 하이에나와 같이 다른 동물이 이미 사냥하고 남긴 것을 먹는 동물은 도망치고 피하면서 놉니다. 놀이를 통해 생존 기술을 연습하는 것입니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영장류라 불리는 보노보(Pan paniscus)가 놀이로 사회적 기술을 학습한다는 연구도 많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보노보와 비슷한 유형의 기술을 터득하면서 인간에게 필요한 고유의 기술도 배웁니다. 언어 놀이나 모래성 쌓기, 진흙 만들기와 같은 건설적 놀이 그리고 기억력, 상상력, 주의력, 추론과 같은 정신적 능력을 활용하는 놀이를 통해 말입니다.
놀이는 생존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입니다. 우리가 청소년 시기를 거치는 이유는 바로 놀이를 위한 것이며, 이 시기에 불충분한 유전적 자질을 개인의 경험으로 보완합니다. 놀이로 생존을 대비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놀이는 적대감을 낮추고 협력을 촉진하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인류학자들은 수렵·채집 사회가 유사 이래 가장 평등하고 협동적인 사회라고 말합니다. 협력과 나눔이 필요한 수렵·채집인들의 생활방식은 지배를 위한 투쟁과 공존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강력한 협력사회 구조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지배의 충동을 억제하는 문화적 관행을 개발해야 했고, 이는 놀이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놀이는 혁신의 동력이다
놀이를 이제 혁신의 동력으로 프레임을 전환해보고자 합니다. 예술이나 철학 또는 문학이 인간의 지능과 상상력의 한계를 확장해왔다면, 놀이는 사회적 혁신이 이룬 비약적인 발전 속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습니다.
혁신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새로운 제품이나 기술은 항상 놀이의 초석이 되어왔습니다. 사진은 기원전 1,500년~1,200년경 청동기 시대의 황새로 알려져 있습니다. 청동은 당시 가장 희귀하고 진보된 재료였습니다. 이 청동으로 새총이나 활 같은 장난감을 만든 것입니다. 오늘날로 치면 컴퓨터, 콘솔, 스마트폰, 인터넷 등이 현대적 놀이의 초석을 이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게임은 5,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인류에게 중요한 놀이 중 하나였습니다. 이집트 왕조의 무덤에서도 발견된 보드게임부터 시작해 게임은 혁신을 거듭하며 ‘비디오 게임’으로 성장해왔습니다. 비디오 게임의 역사는 겨우 40년 정도 밖에 안됩니다. 하지만 비디오 게임을 놀이의 가장 진화된 형태라고 본다면, 비디오 게임은 지구상의 오래된 생명체와 같이 고도의 진화를 겪어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게임, 혁신의 역사를 이끌다
엔씨소프트(이하 엔씨)는 1997년에 설립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당시의 척박했던 인터넷 환경을 기억할 것입니다. 미국 통계국(US Census Bureau)에 따르면, 1997년에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던 가구 수는 총 가구의 20%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극소수만이 이메일 주소를 가지고 있었고, 심지어 주로 사용되던 인터넷 브라우저는 Netscape도 아닌 Mosaic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인터넷의 석기시대에도 엔씨와 몇몇 회사들은 초보적인 기술로도 무엇을 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사람들이 상호 작용하는, 3D 인터페이스 기반의 가상 놀이터를 설계했습니다.
엔씨는 1998년 ‘리니지’를 출시했습니다. 당시 이 게임과 몇몇의 게임들은 최초의 가상 세계를 탄생시켰습니다. 이 가상 세계는 소셜 네트워크가 주류 서비스로 자리를 잡기 훨씬 전부터 소셜 네트워크 시장이 존재한다는 걸 입증해 주었습니다.
이 게임은 온라인 게임의 일반적인 수명인 3~5년을 훌쩍 넘는 20년 동안 성장을 거듭해왔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이 게임과 함께 혁신적인 기술들이 삶 속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봐왔습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뒤를 돌아보고, 게임을 ‘혁신의 중요한 수단’으로 다시 정의해야 합니다.
게임의 경계가 확장될 때, AI 기술은 발전한다
비디오 게임은 기술 개발의 동력이 되어 왔습니다. 게임이 더 나은 그래픽, 더 넓은 세계, 더 많은 콘텐츠로 놀이의 경계를 넓힐 때, 기술은 그 요구에 부응해왔습니다. 새로운 게임이 출시되면 사람들은 그 사양에 맞는 컴퓨터의 성능으로 업그레이드합니다. 또 반도체 제조업체가 멀티 코어 CPU로 기존 컴퓨팅의 한계를 뛰어넘으면, 플레이어들은 게임을 하면서 성능을 테스트했습니다.
90년대 후반 비디오 게임의 그래픽이 2D에서 3D로 전환되었을 때, 강력한 독립형 그래픽 처리 장치(GPU)를 만드는 기술이 개발되기 시작했습니다. GPU가 더 강력하고 저렴해지면서, 2000년대 후반부터 AI 연구진들은 AI연구에 그 성능을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20년 전만 해도 신경망 알고리즘을 실행하려면 공용 슈퍼 컴퓨터를 예약하고 사용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컴퓨팅의 발전이 데이터 저장 및 처리 능력을 향상시켰고, 이후 인공지능의 확산에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 또한 상용 컴퓨터의 CPU 와 GPU 컴퓨팅 성능이 향상됨에 따라 인터넷의 대역폭이 늘어나게 되었고, 이에 가정에서의 광대역 인터넷 이용도 증가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흐름을 보면서 비디오 게임 분야는 AI 기술이 번성할 수 있는 환경이라는 걸 예측할 수 있었습니다.
비디오 게임 플레이어들은 ‘Siri’가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AI와 상호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엔씨는 비디오 게임이 AI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훌륭한 플랫폼이라는 걸 깨닫고, 이 기술을 적용할 수 있는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현재 엔씨의 게임에는 플레이어가 직접 제어하지 않는 캐릭터나 몬스터 또는 크리처들이 AI를 통해 스스로 결정을 내리며 동작합니다. AI가 상대 사용자의 플레이 패턴과 게임 컨트롤 수준을 바탕으로 자신의 파워나 전투 전략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엔씨는 자체 가상 디지털 세계에서 이런 알고리즘들을 테스트할 수 있는 플랫폼과 여기에 필요한 연구 역량, 데이터를 모두 보유하고 있습니다.
게임은 미래의 기술이 나아갈 방향을 가장 정확히 알려주는 지표다
게임은 미래의 기술로 가는 방향을 가리킬 나침반이 될 것입니다. 게임업계보다 최신 기술을 더 많이 사용하는 시장이 없습니다. 또한 인간은 타고난 놀이의 욕구와 새롭고 신기한 것에 대한 집착이 있습니다. 때문에 게임은 미래 기술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 지 알려주는 완벽한 지표가 됩니다.
사회학적인 정보에 주안점을 둔 연구에서는 게임을 단순히 '부정적' 또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단순화된 개념에서 벗어나 복잡한 일상생활 속에서 게임이 맡는 역할과 그 위치를 이해하고자 노력합니다. 플레이어들이 익스플로잇 공격을 활용해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에 치명적인 감염을 퍼뜨려, 의도치 않게 MMO(대규모 다중사용자 온라인 게임)가 질병통제센터의 예측 모델이 된 유명한 일화도 있습니다.*
앞으로 다가올 혁신을 기대해 볼 때, 디스플레이와 데이터 시각화의 발달이 ‘놀이’와 관련된 기술을 더욱 발전시킬 것으로 예측합니다. VR과 AR은 이미 오래전부터 유행어처럼 자리를 잡았고, 진정한 몰입형 플랫폼을 만들고자 하는 개발자와 하드웨어 제조업체들은 새롭고 혁신적인 기술을 앞다투어 보여주고 있습니다. 진화된 디스플레이 기술이 없었다면 VR이 주는 강렬한 몰입의 경험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미 몇몇의 연구진들은 나노 기술을 사용해 홀로그램 디스플레이를 만드는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비록 초기 단계이지만, 이 기술로 열릴 엔터테인먼트 업계와 비디오 게임의 미래는 무한합니다.
다시 놀이에 초점을 맞추다
나노 기술이 더 정밀해지고 네트워크를 통해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게 되면, 거의 실시간으로 촉감을 흡수하고 전송할 수 있는 센서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의 기술 발전 속도를 고려할 때, 향후 10년 안에 그런 세상이 온다는 걸 상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이미 시장에는 플레이어가 게임 안에서 받는 피해를 시뮬레이션하는 조끼를 입고 게임에 더 몰입할 수 있게 하는 여러 시제품이 나와 있습니다. 아직 걸음마 단계이기는 하지만, 올해 초에는 한 연구 팀이 AR과 VR 인터페이스로 사람을 기계에 연결해 주는 유연한 착용식 압전 센서를 만드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의 쌓아온 역량을 봤을 때, 나노 기술은 더 많은 활용 가능성을 점 쳐 볼 수 있습니다. 이미 홀로그램 디스플레이를 만드는 데 나노 입자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실험실을 벗어나 활용 단계에 있는 것입니다. 고글이나 헬멧 같은 장치가 없어도, 혹은 화면 앞에 가만히 앉아있지 않아도 얼마든지 몰입감 넘치는 경험이 가능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몰입형 스토리를 만드는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어떻게 달라질지 지금은 상상하기가 어렵습니다.
사용자와 대화하는 반응형 환경이나 통신망으로 최종 사용자에게 전달되는 다차원적 감각 데이터, 고밀도의 데이터를 처리하고 구성할 수 있는 디스플레이 등은 모두 우리가 기대하는 미래의 모습입니다. 이들은 특히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강력한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다가올 미래에는 놀랍고 혁신적인 기술들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 기술을 함께 즐기며 성장할 수 있도록, 완전히 새로운 구조를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길 고대합니다.
엔씨는 학계의 많은 파트너와 함께, 연구자들이 놀이를 위한 차세대 기술 혁신을 실현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QLED를 사용하는 차세대 VR 헤드셋을 만들든, 가상 세계 안에서 전신 제어와 상호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나노 센서를 만들든, 아니면 이 모든 것을 뛰어넘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실현하든 지금까지 이야기한 주제, 즉 놀이에 초점을 맞추면 좋겠습니다. 놀이를 이해하고 놀이를 통한 혁신을 이해해야 인간에게 다가올 중대한 사회적 돌파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