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태어나면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다.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육체와 영혼을 분리된 것으로 여겨 왔고, 인간의 죽음을 육체에서 영혼이 빠져나오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다면 과연 육체에서 벗어난 영혼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영혼의 행방에 대한 생각은 각 문화권마다 차이가 있지만, 신기하게도 죽은 자가 처음으로 맞닥뜨리는 존재가 있다는 점만큼은 대동소이하다.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영혼이 처음 만나는 자, 바로 사신死神이 있다고 상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신은 동서고금 이야기들에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죽음 자체를 의미하는 데 그치지 않고, 때로는 망자의 삶을 심판하거나 망자를 저승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세계 신화 속 사신들
한국에서는 〈전설의 고향〉이나 〈신과 함께〉 등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염라대왕과 저승사자가 그 역할을 한다. 저승사자는 망자를 염라대왕에게 인도하는 일을 하는데, 때로는 망자가 이승에서 다하지 못한 일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고 가끔은 돕기도 한다. 염라대왕은 저승사자가 데려온 망자를 심판하는데 망자의 생애를 살핀 후 지은 죄에 합당한 벌을 내린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 일본(일본에서는 염라대왕을 염마閻魔,えんま라고 부른다.)에서도 염라대왕의 존재, 개념에 익숙하다. 이는 염라대왕이 고대 힌두교 경전 베다Verda에서 언급된 야마Yama에서 유래되었기 때문이다. 야마는 처음으로 죽음으로 가는 길을 발견하였고 그 결과 최초로 죽음을 맞이한 인간으로, 그때부터 세상에는 죽음이 깃들었다고 한다. 초창기 야마는 죽음의 심판자라기보다는 천상이나 지하 세계를 돌아다니는 여행자에 가까웠다. 하지만 점차 망자의 왕으로 변모하면서 인간을 벌하는 무시무시한 이미지가 반영된 탓에 몸은 푸른빛을 띠며 곤봉이나 올가미를 들고 검은 소를 타고 다니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의 곁에는 눈이 네 개인 개 두 마리가 있는데, 이 개들이 세계를 돌아다니며 망자의 영혼을 모아 오면 야마가 망자의 생전 행실에 따라 판결을 내린다.
이집트 신화에서는 아누비스Anubis가 죽은 자를 지키는 신, 영안실의 신으로 알려져 있다. 아누비스는 갯과 동물인 자칼로 표현되거나 자칼 머리에 인간의 몸을 한 수인獸人으로 묘사된다. 고대 이집트의 사후 세계 안내서인 〈사자의 서〉에 따르면 망자는 진실의 방에서 심판을 받는다. 아누비스가 죽은 자를 심판하는 재판관인 오시리스Osiris 앞에서 죽은 이의 심장을 저울에 재는데, 이때 깃털보다 심장이 무거우면 죄가 많다고 판단한다. 아누비스는 원래 곡물의 신이었던 오시리스가 동생 세트에게 살해당해 토막 나자 그의 유해를 처음으로 미라로 만든 신이기도 하다. 이후 부활한 오시리스는 명계를 관장하는 신이 되었고, 아누비스는 망자를 오시리스의 법정으로 인도하고 미라를 만들 때 감독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아누비스의 옷이나 피부색이 검은 이유는 미라 제작 시 사체를 방부 처리하기 위해 검은 타르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는 그리스 신화에서 등장하는 하데스Hades가 죽음의 신으로 불리며 지하 세계를 다스리는 신으로 언급된다. 하데스 옆에는 세 개의 머리에 뱀의 꼬리를 달고 있는 케르베로스Cerberus 또는 hound of Hades가 자리하는데 보통 명계의 문을 지키는 것으로 그려진다. 타나토스Thanatos는 우리나라의 저승사자 격으로 하데스의 명을 받아 영혼을 저승으로 데려온다. 타나토스는 우리에게 익숙한 사신의 형상 그대로 검은 로브를 뒤집어쓰고 낫이나 검을 찬 모습으로 묘사되지만 처음부터 이런 모습은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아르테미스 신전의 타나토스 대리석 조각은 날개 달린 나체의 청년 모습을 하고 있다.
북유럽 신화에서는 로키의 딸인 헬Hel이 저세상의 여왕으로 불린다. 몸의 반은 검고 반은 흰 모습 혹은 한쪽은 소녀, 다른 쪽은 노인으로 묘사되는 등 이야기에 따라 여러 모습으로 등장한다. 헬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지옥헬, Hell의 어원과도 동일한데, 그 때문인지 하데스에게 케르베로스가 있다면 헬 곁에는 지하 세계를 지키는 경비견 가름Garmr이 있다.
헬과 같이 죽음을 관장하는 여신은 메소포타미아 신화 속에도 있으니, 바로 에레슈키갈Ereskigal이다. 에레슈키갈이 관장하는 명계는 한번 발을 들이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도록 일곱 겹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각각의 성벽 문에 도달하면 자신이 입고 있는 것을 하나씩 벗어야 하기 때문에 중앙에 도달하면 나체가 되어 영원한 암흑 속에 갇힌다. 에레슈키갈은 전쟁의 신인 네르갈이 명계를 침입한 이후 평화를 위해 그와 결혼하고 통치권을 넘겨주었다.
현재 알려진 사신 외형의 유래
서양에서는 기독교가 널리 퍼지기 시작하면서 사신을 그림 리퍼Grim Reaper 혹은 데스Death로 일컫게 되었다. 성경에서는 사신을 ‘죽음의 천사’라고도 부르는데, 주로 검은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으며 해골 얼굴에 긴 낫을 든 모습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성경에 등장하는 묵시록의 네 기사Four Horsemen of the Apocalypse 중 죽음의 청기사와 가장 유사한 형태다. 묵시록의 네 기사는 ‘재앙을 불러일으켜 세계를 멸망하게 할 4인의 기사’로서 정복의 백기사, 전쟁의 적기사, 기근의 흑기사, 죽음의 청기사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죽음의 청기사가 노인이나 해골의 모습으로 묘사되며 삼지창이나 낫 형태의 무기를 들고 있다고 이야기된다.
알브레히트 뒤러의 목판화 「묵시록의 네 기사」
(맨 아래 삼지창을 들고 있는 노인이 죽음의 청기사다.)
빅토르 바스네트후의 「묵시록의 기사」
(가장 왼쪽, 해골 얼굴에 푸른 말을 탄 자가 죽음의 청기사다.)
사신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큰 낫은 과거 중세 유럽에서 흑사병이 유행했던 시대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전염병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가는 것이 마치 수확기에 밀을 낫으로 베는 듯하다고 하여 인간의 생명을 큰 낫으로 베어 가는 형상으로 사신을 묘사한 것이다.
리니지M '사신' 브랜딩 영상 속 그림 리퍼. 우리에게 익숙한 사신의 외형으로, 큰 낫을 들고 있다.
리니지M 사신
엘모어 왕국을 지키기 위해 온 힘을 쏟았던 탈리안. 어느 날 적대 세력인 타락의 언데드 마족 군단이 엘모어를 침공하자, 그는 선봉에서 군대를 이끌었다. 탈리안은 평상시에도 전쟁을 철저하게 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침공을 간단하게 막아낼 수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지치지도 않고, 죽어도 다시 부활하는 언데드 마족 군단을 막아 내는 일은 그에게도 역부족이었다. 이러한 상황에도 끝까지 물러서지 않고 적군과 맞서 싸우던 탈리안은 결국 치명상을 입고 쓰러진다.
그리고 얼마 후 탈리안이 칠흑 같은 어둠에 둘러싸인 공간에서 눈을 떴을 때 그의 앞에는 그림 리퍼가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림 리퍼는 명계의 질서를 어지럽힌 자들을 정리하길 바랐고, 탈리안은 타락군을 섬멸할 수 있는 힘을 원했기에 둘은 서로 원하는 바를 이루어 줄 수 있는 운명임을 깨닫고 계약을 맺게 되고, 곧이어 탈리안은 검고 푸른 그림자에 휩싸이며 또 다시 의식을 잃는다.
정신을 차리자 탈리안은 다시 전장 속에 있었다. 치명상을 입었던 몸은 치유되어 있고, 손에는 피 묻은 장검 대신 강력한 기운을 내뿜는 커다란 낫이 쥐여져 있다. 탈리안은 몸을 일으킨 후 커다란 낫을 거침없이 휘둘러 눈앞의 언데드 무리를 쓰러뜨린다. 신기하게도 이 낫에 베인 언데드는 더는 부활하지 못한다.
이렇게 리니지M에서는 아덴과 엘모어의 세 차례 전투에서 언데드의 진격을 막아낸 자를 ‘사신’이라 명명했다.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엘모어 왕국을 지키기 위해서 그는 그림 리퍼와 손을 잡고 자신의 목숨을 바쳐 무자비한 학살자인 사신으로 다시 태어난다.
“내 사명은 오로지 단 하나, 엘모어를 지키는 것이다.”
*리니지M 사신 캐릭터의 외형과 사용 무기 등 자세한 이미지는 The Game Art “LineageM | 죽음으로 대륙에 생명을 불어넣다, 사신”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