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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엔씨 게임 AI 부문 인턴십을 수료했다. 글로벌 인턴십 1기 수료자라 할 수 있다. 이후에는 석사 과정에서 게임 개발에 초점을 둔 컴퓨터공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전문연구원으로 엔씨에 다시 입사했다. 현재 Aion2 Seed에서 게임 엔진 기술을 개발하는 엔진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다.

인턴십에 지원할 당시엔 MIT에서 수학을 전공하는 학부생이었다. 수학과는 두 가지 전공으로 나뉜다. 하나는 이론수학, 다른 하나는 응용수학이다. 나는 응용수학에 집중하는 Mathematics with Computer Science 분야를 공부했다.

어릴 때부터 게임을 좋아했다. 하지만 게임을 만들겠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대학교 3학년 때 교양 수업으로 게임 디자인 수업을 들었다. 직접 프로토타이핑을 하고 보드게임을 만드는 수업이었는데 무척 재밌었다. 이때를 계기로 처음 게임 개발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수학과 게임의 조합이 생소해 보일 수 있지만, 사실 게임에 수학이 많이 응용된다. 게임 캐릭터의 스탯(Stat), 재화의 가격 등 숫자로 이뤄지는 것이 무척 많다. 게임이 잘 돌아가려면 이 숫자들이 잘 조화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플레이어들이 A라는 캐릭터만 플레이하고 B, C, D라는 캐릭터를 아무도 선택하지 않으면 게임의 밸런스가 깨질 수밖에 없다. 밸런스가 무너진다는 건 게임의 차원이 낮아진다는 뜻이다. 따라서 게임의 밸런스를 맞추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물론 개발자가 늘 분석하며 하나하나 손으로 맞추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걸 AI 기술로 자동화하면 훨씬 효율적이다. AI 자동 밸런싱을 연구하여 실제 게임에 적용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MIT에는 ‘MISTI’라는 해외 인턴십 프로그램이 있다. 아시아, 미국, 유럽 등 다양한 지역의 기업들이 ‘MISTI’를 통해 인턴십을 모집한다. 내가 지원하던 해에 마침 한국이 처음으로 대상 지역에 추가되었다.

모국인 한국에서 인턴십을 하면 언어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빨리 적응하고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한국의 다른 IT·테크 회사도 선택지에 있었다. 당시 학기에 게임 디자인 수업을 들었기 때문에 게임에 대한 관심이 가장 높은 시기였다. 그래서 가장 흥미로운 ‘게임’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곳에서 커리어의 첫발을 떼고 싶었다. MMORPG 개발의 선두 기업인 엔씨에서 무엇을 경험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래서 주저하지 않고 엔씨를 선택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학생 땐 실제 업무 경험을 많이 쌓기가 쉽지 않다. ‘난 이렇게 일을 잘한다’라고 내세우지 않았다. 당시 면접관들도 기술적인 부분을 크게 바라는 것 같진 않았다. 대신 내가 강조한 점은 ‘학습을 빨리한다’라는 것이었다. 처음 접하는 환경에도 빠르게 적응할 수 있고, 최소한 따라가는 시늉이라도 할 수 있다고 했다.

3개월이라는 기간은 짧지 않지만 길지도 않다. 인턴십 기간에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회사와 나를 조화하여 서로 윈윈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리크루팅 과정에서도 내가 하고 싶은 것과 잘하는 것, 그걸 활용하여 해보고 싶은 프로젝트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했다. 감사하게도 엔씨도 이런 점들을 매우 관심 있게 들어주었다. 엔씨에서 일하면 기술적 업무 이상으로 나에게 맞춤화한 프로젝트를 경험할 수 있겠다는 기대가 컸다.

당시 개발 중이던 게임에 관한 AI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해당 게임은 개발 초기 단계여서 프로토타입만 나와 있는 상태였다. 대전 게임이었기 때문에 테스트하려면 상대 AI가 필요했다.

만약 플레이 상대가 사람이라면 게임을 지켜보며 주요 순간들을 꼽을 것이다. 그렇다면 상대가 AI여도 승리하기까지의 주요 순간을 하이라이트로 뽑아낼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래서 내 연구 과제는 ‘게임 리플레이를 보여주며 게임의 하이라이트를 식별하는 AI를 만들 수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으로 정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플레이어가 대전에서 승리하는 데 어떤 조건들이 필요한지를 우선 알아내야 했다. 이 조건들을 숫자로 나타낼 수 있으면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론적으로, 프로젝트의 질문에 답을 내놓진 못했다. 3개월 안에 명확한 답을 내기에는 질문이 무척 광범했다고 생각한다. 결과보다는 단기적으로 내가 거둔 성과와 그다음의 장기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것들을 제안하는 데 집중했다.

3개월간 분석한 결과 플레이어의 승기를 점수로 표현하는 그래프를 그려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그래프만으로 대전의 하이라이트를 뽑아내기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더 정확한 그래프를 그려내려면 플레이어가 유닛을 얼마나 뽑았는지, 얼마나 이겼는지, 싸우는 위치가 우리 기지에 가까운지 상대 기지에 가까운지 등 훨씬 많은 정보를 파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해답을 찾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문제를 푸는 과정과 고민들에 대해 멘토나 팀원분들의 인정을 받을 수 있어 기뻤다.

난이도만 보면 당연히 어려웠다. 게임 엔진이나 코딩 언어를 처음 써봐서 더 어렵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일을 혼자서만 하지는 않았다.

인턴십 기간의 멘토였던 선배와 자주 미팅하며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이런저런 질문을 정말 많이 했다. 지금 생각하면 죄송할 정도다.(웃음) 실장님도 일주일에 한 번은 미팅에 참석하셨기에 그분으로부터 프로젝트의 거시적 방향성이나 기술적 조언들을 구할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스스로를 가두고 있던 제한적 접근 방식을 깨고 새로운 시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팀원분들과 소통하는 과정이 프로젝트에도 당연히 도움이 되었지만, 현재 내가 일하는 방식을 정립하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 학교에선 팀 프로젝트가 아니라면 혼자서 공부를 잘하면 됐다. 하지만 회사에선 어떤 일도 혼자서 할 수 없다. 프로그래머의 경쟁력은 개발 실력뿐 아니라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결과를 낼 수 있느냐에 달렸다는 걸 실감했다. 이때를 계기로 지금도 업무를 할 때 다양한 개발 파트와 이야기하고 피드백을 구하며 새로운 시각을 얻으려 노력한다. 

엔씨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곳’이다. 삼시 세끼 제공되는 식사부터 피트니스, 메디컬 센터 등 다양한 편의 시설과 제도가 있어서 큰 어려움 없이 인턴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인상적이었던 점은 일을 대하는 선배들의 태도였다.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 쓰며 진정성 있게 일하는 태도였다. 나도 팀의 일원으로 인정받고 신뢰받기 위해선 진심을 다해야 한다고 느꼈다. 또한 누구도 나의 질문을 귀찮게 여기지 않았다. 직급과 상관없이 내가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관심 있게 보고 조언해주었다. 이제 실무자의 입장이 되니 선배들에게 더욱 감사하다. 현재는 다른 팀이 되었지만 아직도 인턴 당시의 팀원분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든든하다.

쉽게 말하면 게임 엔진은 게임을 만드는 하나의 도구다. 엔진 프로그래머는 게임 기획자, 아티스트, 클라이언트 프로그래머 등이 작업할 때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강력한 놀이터를 제공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소 다른 개발 파트들과 디테일한 부분에 관해서도 많이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 엔진 프로그래머는 개발자들의 요청 사항을 분석해서 ‘된다’, ‘안 된다’, ‘우리 게임에 쓸 수 있다, 없다’를 빠르게 판단해야 한다. 개발자들이 사용하기 편하고 빠르게 작업할 수 있는 툴을 제공하는 것이 엔진 프로그래머의 역할이다.

그렇다. 인턴십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아마 엔씨에서의 인턴십이 아니었다면 게임 분야 석사를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석사 과정 졸업 프로젝트에서 상용 엔진이 아닌 새로운 게임 엔진을 직접 만들어 게임을 개발해야 했다. 이게 출발점이 되어, 엔진 기술을 연구하는 엔씨 Animation Tech Lab실에 전문연구원으로 재입사했다. 엔씨에서의 인턴 경험이 긍정적이었고, 게임 AI에 대한 경험과 석사 과정의 연구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3년간 엔진 기술을 연구하다가 현재는 Aion2 Seed로 이동해 개발 중인 게임의 언리얼 엔진 확장과 최적화를 연구하고 있다.

단기 목표는 게임을 출시하는 것이다. 가능하면 〈Aion2〉가 출시될 때까지 함께하고 싶다. 사실 언리얼 엔진 등은 이미 대단한 제품이다. 하지만 아무리 훌륭한 엔진도 게임에 딱 맞아떨어지진 않는다. 그래서 우리 게임에 맞도록 고치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기존의 틀을 깰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세계적 경쟁력을 지닌 게임을 만들기 위해 이런 용기를 낼 수 있는 엔진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다.

개인적으로 스포츠의 경쟁을 좋아한다. 게임이나 스포츠에선 치열하게 준비하고 주어진 시간 동안 모든 것을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결과가 나오면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열정을 다해 준비하고 주어진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싶다.

인턴십으로 내가 얻은 가장 큰 보상은 관심 있는 업계와 회사에서 실제로 일해본 경험이다. 밖에서 막연히 그려보는 것과 안에서 경험하는 것은 정말 다르다. 학계 연구와 회사에서 수행하는 프로젝트는 진행 과정부터 목표까지 매우 상이하기 때문에 새로운 시각을 기를 수 있다. 또한 현업에 적용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때문에 기술적 수준의 향상도 기대할 수 있다.

인턴십에 지원하기 전에 실제 게임을 만드는 사람의 시선으로 프로젝트의 방향성을 잡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게임 개발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이것을 실제 개발에 사용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반면 아카데미에서는 시간을 줄일 수 있는지, 자원을 덜 쓸 수 있는지 등을 연구하고, 그게 가능하다면 논문감이 된다. 자신이 원하는 프로젝트의 방향성을 잘 잡고, 멘토나 선배들과 충실히 논의해 발전시킨다면 학교에서 배우는 것보다 값진 경험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