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tor Crew:
엔씨의 콘텐츠와 자신의 크리에이티브를 연결해 즐거움을 확장시키는 사람들
엔씨의 < NC FICTION PLAY >에서는 배명훈, 장강명, 김금희, 김초엽, 김중혁, 편혜영, 박상영, 국내 대표 일곱 명의 소설가들이 쓴 즐거움의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로 엮었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로 독자들은 작가들의 일곱 가지 이야기를 보고, 듣고, 경험하며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넘어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고 상상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번 인터뷰는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SF 소설 장르의 붐을 일으킨 김초엽 작가가 주인공입니다. 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동시에, 기술이 진보되는 과정에서 소외되는 약자를 드러내 보여주며 새로운 SF 소설의 지평을 열고 있습니다. 이번 작품 ‘글로버리의 봄’은 ‘즐거움’의 기술로 만들어진 가상 세계를 그려냈습니다. 김초엽 작가와의 인터뷰를 통해 즐거움의 양면성과 ‘글로버리의 봄’에 담긴 시선, SF 작가로서의 가치관에 대해 들어봅니다.
∙ NC FICTION PLAY 입장하기 → https://about.ncsoft.com/fictionplay
이번 < NC FICTION PLAY >에서 공개한 ‘글로버리의 봄’이 어떤 이야기인지 간략하게 소개해 달라.
‘글로버리의 봄’은 ‘글로버리’라는 가상의 도시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주인공인 ‘봄’은 글로버리에서 가상 공간을 설계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설계가 마음대로 잘 되지 않게 되면서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그리고 ‘즐거움의 도시’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아가는 약간은 미스터리한 내용의 소설이다.
엔씨와 같은 게임 회사와 협업은 처음일 것 같다. 협업 제안을 받았을 때 들었던 생각과 참여를 결정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외부에서 제안이 오는 경우가 흔하지는 않지만, 결정하는 데 큰 고민은 없었다. 일단 ‘즐거움’이라는 소재 자체가 독특하고 재미있어 보였다. 그리고 평소 게임을 좋아하는 편인데 생각해 보니 한 번도 게임을 소재로 한 SF를 쓴 적은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 엔씨와의 협업을 통해 시도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임을 좋아한다고 들었다, 게임이라는 매체만의 매력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우선 게임과 내가 쓰는 SF는 닮은 점이 많다. 다만, 게임은 가상 세계를 더 적극적으로 경험하게 만드는 매체라고 생각한다. 플레이어가 능동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면 아무 사건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게임 속 세계의 일부가 되었다는 감각을 느끼게 한다는 점이 게임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 NC FICTION PLAY >의 키워드는 ‘즐거움’이다. 작가님이 생각하는 즐거움은 무엇이며, 이번 작품에 즐거움이란 키워드가 어떻게 반영됐는지 궁금하다.
이번 작업을 통해 ‘즐거움’이라는 감정이 무엇인지 오래 고민했고, 또 놀이의 역사, 인간과 놀이의 관계에 대해 살펴보게 되었다. 예전에는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부분이었는데, 새삼 ‘즐거움’이 복잡한 감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즐거움이란 대개 긍정적 가치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나 또한 ‘즐거움’이란 단어에서 즐겁게 사는 것, 즐겁게 일하는 것을 떠올리고 이것들을 중요하게 여긴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즐거움’의 이면을 살펴보고 싶었다. 나에게 무척 즐거운 일이 타인, 혹은 다른 존재들에게는 괴로운 일이라면 어떨까 하는 단순한 발상에서 이야기가 시작되었고 많은 고민들을 하면서 글을 썼다. 물론 소설 안에서는 이게 단순하게 표현이 되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럼 작가님에게 특별히 즐거운 순간이 있다면 언제인가?
소설을 다 쓰고 났을 때가 가장 좋다. 마음에 드는 소설을 완성하고, 일주일쯤 시간이 흘러 다시 읽어볼 때 큰 즐거움을 느낀다. 사실 최근에는 일 외적으로도 즐거움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친구나 가족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려고 노력하고 새로운 취미도 일부러 만들려고 한다.
작가님은 SF 소설을 주로 쓰는데, 여러 장르 중에서 어떻게 SF 소설을 쓰게 되었는지, 작가님이 생각하는 SF 소설의 매력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어릴 때부터 판타지나 SF를 좋아했다. 현실을 깊이 들여다보는 소설을 읽으면 느껴지는 건 많지만, 이 세계에서 도피하는 즐거움이 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편 지금 직접 SF 소설을 쓰면서 느끼는 건 가상 세계가 주는 은근한 안전함이다. 내가 현실에 완벽히 속해 있지 않고 한 발짝 떨어져서 현실을 바라보는 것이 안전한 느낌이랄까. 오히려 이렇게 한 걸음 물러서서 보기 때문에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방식으로 현실을 볼 수 있다. 그 기울이는, 떨어져서 보는 감각이 SF 장르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님의 소설을 보면 ‘도형’과 ‘공간’이 잘 활용되어 이야기의 바탕에 깔려 있다는 느낌이 든다.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SF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가상 공간, 약간은 인공적인 느낌으로 설계된 공간에 매력을 느낄 것이다. 나 또한 시각화된 네트워크, 정교한 우주 거주구, 우주 정거장, 자로 잰 듯한 가상 도시 같은 공간들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런 공간들은 마치 물리적으로 구현된 거대한 실험실같이 느껴진다. 그래서 소설을 쓰면서 매번 새로운 사고 실험의 공간을 만들어 본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나만의 세계관이 구축되는 것 같다.
이번 작품 ‘글로버리의 봄’에서 글로버리호의 탑승자는 ‘여행자’와 ‘블록’으로 나뉜다. 이들 중 ‘여행자’는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는 사람들인가? 무엇을 위해 글로버리호에 탑승했는가?
일부러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았지만, ‘여행자’는 지구에서 먼 행성으로 이동해 가는 사람들이다. 만약 우주여행이 보편화된다면 이동해 가는 과정 자체를 즐기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행자들의 입장에서 ‘글로버리 호’는 그냥 장거리 여행의 유흥거리에 불과하다. 우주여행을 할 때 몇 개월이 넘는 시간을 그냥 ‘눈 깜빡할 새’로 넘겨 버리는 걸 아까워하는 사람들이 반수면 크루즈에 탑승하리라 생각했다. 몇 개월 이상을 그 안에서만 보내야 하니 얼마나 그럴싸한 즐거움을 제공하는지가 여행자들에게는 중요할 것이다. ‘글로버리’의 가상 세계 시스템은 일반 비행기 안에서도 즐길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 시스템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며 글을 썼다.
그렇다면 ‘여행자’에게 자극적인 재미를 선사하는 또 다른 부류인 ‘블록’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그리고 왜 직원도 아닌 ‘블록’으로 명칭을 정했는가.
블록은 가상 세계마다 복제해서 사용할 수 있는 ‘부품’이라고 생각했다. 게임에 빗대어 말하면, NPC같은 존재랄까? 어떤 플레이어들은 NPC를 프로그램 데이터 정도로만 생각하고 또 어떤 플레이어들은 NPC를 굉장히 소중하게 여긴다. 이렇게 NPC, 그 자체가 감정을 가진 것도 아닌데, 그것들을 대하는 플레이어들의 태도가 가지각색인 것이 눈여겨볼 만한 지점이라고 줄곧 생각했다. ‘만약 이 NPC들이 감정과 마음을 가진 것들처럼 행동하게 된다면, 그때 우리의 태도는 변화할까, 아니면 지금처럼 폭력적으로 대하기도 하고 그럴까?’ 하는 생각이 결국은 ‘블록’의 설정을 구축하면서 반영이 된 것 같다.
이번 작품의 주인공인 ‘봄’만이 한국어 이름이다. ‘봄’이라는 이름에 담긴 의미가 따로 있는지? 그리고 이전에 한 인터뷰에서, ‘사회적으로 기대되는 도덕적인 윤리를 독자가 용납할 수 있는 선에서 배반하는 인물’을 좋아한다고 했다. 이번 작품에서 ‘배반하는 인물’은 ‘봄’인가?
‘글로버리’는 추상화된 공간이기 때문에 인물들의 국적을 추측하기 어렵게 만드는 장치가 필요했다. 사실 처음에는 조금 더 영미권 느낌의 이름이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봄’이라는 이름의 어감이 마음에 들기도 했고, ‘글로버리’의 블록들에게 처음으로 ‘봄(계절)’을 만들어 주는 일을 한다는 뜻으로 이중의 의미를 부여해 보았다.
봄과 파탄 모두 세계의 규칙을 어기는 행위를 하기 때문에 둘 다 배반하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봄은 타인을 구하기 위해서, 파틴은 자신의 해방을 위해서 그런 결정을 했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있을 것 같다.
이번 작품에서 탑승자 외에 등장하는 또 다른 부류는 ‘설계자’다. 설정상 이들은 즐거움을 설계하는 사람들이지만 그다지 즐거워 보이지 않는다. 이들과 ‘글로버리 호’라는 사회의 상호 작용에 대해 어떤 구상을 하고 작업을 하셨는지 궁금하다.
굉장히 단순화되기는 했지만, 누군가의 즐거움을 위해 완전히 도구가 된 존재들을 떠올려 보았다. 누군가의 즐거움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때로는 즐거움의 생산 구조에 소모되고, 대상화되기도 하지 않나. 현실에서도 엔터테인먼트와 미디어 산업, 문화 예술, 게임 업계 모두가 충분히 그런 문제를 지닌 것 같다. 즐거움의 화려한 이면에서 고생을 하는 것 말이다.
게임이나 영화 같은 매체와 달리 소설은 오로지 언어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 독자들을 몰입시켜야 한다. 특히 SF 소설은 다른 장르에 비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데 더 많은 노력이 들 것 같은데,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 구체화하는 작업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맨 처음 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는 안개 속을 헤매는 것 같다. 하지만 쓰는 과정 속에서 계속 구체화를 시도하면서 안개를 헤치고, 손전등으로 소설 속 세계 곳곳을 비춰본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이 세계의 모습에 대해 알게 되면, 처음으로 돌아가 새로 얻은 정보들로 구조를 다시 짜기도 한다.
그렇게 계속해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 글을 쓰다 보면 벽에 부딪히는 순간이 있을 것 같다. 그런 상황을 극복하는 방법이 따로 있는가.
매번 새로운 이야기를 쓰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나 걱정이 항상 있기 때문에 소설을 쓸 때마다 매번 벽에 부딪힌다. 혹시나 내가 이미 고갈된 것은 아닐지 고민하기도 한다. 근데 아직까지는 괜찮다고 느껴지는 게, 굉장히 나 자신에게 인풋을 많이 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약간 ‘책 10권을 읽으면 그래도 이야기 하나는 나온다.’ 요런 느낌의 접근 같다.
이야기가 막힐 때 그걸 풀어내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그 이야기 안에서 답을 찾아가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바깥에서 더 충분히 흡수하는 것이다. 소설과 논픽션을 가리지 않고 읽으며 생각을 자유롭게 열어 두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게 하면 고민하고 있는 문제가 뇌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작은 단서를 통해서도 금방 답을 찾을 수 있다.
그러면 글을 쓰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있다면 무엇인가.
사실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글을 쓰진 않는다. 이 이야기가 잘 읽히는지, 독자들에게 재밌게 다가갈지를 우선적으로 생각한다. 비단 ‘재미’뿐만 아니라 슬픔이나 혼란스러움 등의 다양한 감정들 역시 잘 전달되길 바라며 글을 쓴다.
그다음 바람은 독자 스스로가 이야기를 읽고 난 후 어떤 질문들을 떠올리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 질문은 소설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작품을 재미있게 읽고 나서 책을 덮었을 때 어쨌든 독자들에게 무언가 남는 것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작업한다. 그리고 작가로서 스스로에게 가지는 한 가지 바람은 작품을 읽기 전까지 상상해 보지 못했던 어떤 상황, 처지, 감정을 경험해 보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
소설을 읽고 난 후 독자들에게 무언가 남는 것이 있으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혹시 이번 작품 ‘글로버리의 봄’을 통해서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
철학적인 메시지를 던지고자 쓴 작품은 아니지만 나는 이 소설에서 어떤 ‘도피처’를 만드는 것에 조금 더 집중했던 것 같다. 주인공이 굉장히 극단적인 즐거움에서 한 걸음 물러나 그 즐거움으로부터 또 다른 도피처를 만드는 것과 같이, 요즘 세상에서 소비되는 자극적인 즐거움에 대한 피로감을 이야기로 풀어보고 싶었던 것 같다.
독자들이 다 읽고 즐거움을 설계하는 사람들 그리고 즐거움 속에서 대상화가 되는 사람들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글로버리의 봄’에서 가장 좋아하는 한 문장을 말해 달라.
“즐거움의 도시는 승객들을 위해 준비된 완벽한 세계다. 이제 우리는 글로버리가 우리를 위한 곳이 아님을 안다.”
* 본 인터뷰에서 언급되는 내용은 인터뷰 당사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NCSOFT의 공식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