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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6.28 Creator Crew

    NC FICTION PLAY | 여기보다 재미있는 곳에 가자 ‘바비의 집’ 박상영

    Creator Crew:
    엔씨의 콘텐츠와 자신의 크리에이티브를 연결해 즐거움을 확장시키는 사람들

    엔씨의 < NC FICTION PLAY >에서는 배명훈, 장강명, 김금희, 김초엽, 김중혁, 편혜영, 박상영, 국내 대표 소설가 일곱 명이 쓴 즐거움의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로 엮었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로 독자들은 작가들의 이야기 일곱 가지를 보고, 듣고, 경험하며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넘어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고 상상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평단과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청춘의 방황과 우울을 특유의 유머로 승화시키는 박상영 소설가의 작품들은 재미있고 가볍게 읽히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그 이면을 잠시 바라보면 깊고 씁쓸한 무언가 녹아져 있곤 합니다. 그를 만나 이번 작품 ‘바비의 집’에서 즐거움의 이면에 있는 일상 속 균열과 내면 아이의 그림자에 관한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 NC FICTION PLAY 입장하기 → https://about.ncsoft.com/fictionplay


    우리가 즐거움이라고 느끼는 것의 본질은 무엇일까

    이번 < NC FICTION PLAY >에서 소개한 ‘바비의 집’은 어떤 작품인가.

    ‘바비의 집’의 주인공은 사회생활에서 크고 작은 좌절을 겪다가 우연한 기회로 일상의 균열을 느끼고 무작정 잘 모르는 세계인 뉴욕으로 도피해 버린다. 그러고 뉴욕에서 시간도 공간도 종잡을 수 없는 장소에 들어서서 자신의 어릴 적 트라우마를 발견한다. 그런데 주인공은 이를 놀이로 승화시키면서 내면의 문제를 탐구해 나간다는 판타지 같은 이야기이다.

    엔씨와 같은 게임 회사와 협업은 처음일 것 같다. 협업 제안을 받고 처음 든 생각은 무엇이고, 참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는가.

    리니지 첫 번째 시리즈가 부흥할 때 10대를 보낸 소위 ‘리니지 세대’로서 일단 엔씨라는 이름 자체가 굉장히 친숙하고 반가웠다. 나 역시도 공부보다는 게임을 즐겨 하던 10대 시절을 보냈기 때문이다.

    한편 작가로서는 주로 출판계나 예술계와 관련된 지면에서 활동하면서 갑갑할 때가 있었는데, 다른 업계 사람들과 다른 분야에서, 다른 주제로 소통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호기심이 생겨서 참여하게 되었다. 뭔가 새로운 에너지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다.

    ‘리니지 세대’로서 느끼는 게임만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게임의 첫 번째 매력은 현실을 잊게 만드는 강한 몰입성인 것 같다. 현대인이 가장 흔하게 앓은 정신적 질환 중에 번아웃증후군이 있는데, 이는 업무에 있어서 쉼표를 찍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 같다. 그런 와중에 게임을 하면서 내 일상 혹은 업무가 아니라 다른 무언가에 깊이 열중함으로써 일상에 세게 쉼표를 찍어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내가 생각한 게임의 또 다른 매력은 소모성이다. 사는 시간이 생각보다 되게 긴 것 같다. 그렇기에 어떻게 시간을 잘 소비하는지가 중요한 문제가 될 수밖에 없게 됐다. 사람들이 번아웃이 되는 또 다른 이유는 시간을 생산적이고 가치 있는 일로 채워야 한다는 강박감 때문인 것 같은데, 그런 이들이 게임을 하면서 유희로 시간을 흘려 보내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 같다.

    < NC FICTION PLAY >의 키워드는 ‘즐거움’이다. 작가님이 생각하는 즐거움은 무엇이며, 이번 작품에 즐거움이란 키워드가 어떻게 반영됐는지 궁금하다.

    처음에 ‘즐거움’이라는 주제를 들었을 때 조금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이전부터 우리가 즐거움이라고 느끼는 것의 본질은 무엇일까에 대한 궁금증이 있어서 단순히 즐거운 일을 한다는 것을 소설로 구현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궁금증을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이런저런 생각을 다양하게 하다 보니 내 나름대로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우리는 즐거움을 추구하거나 좋아하는 일을 할 때 무의식 속에서 자신의 과거나 내면의 문제를 극복하거나 혹은 답습하는 방식을 선택하지 않을까 하는 결론 말이다. 그래서 ‘즐거움이라는 감정 역시도 피상적인 정의에서 머무를 수 있겠지만, 그 안에는 개인의 다양한 문제가 많이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이 생각을 바탕으로 작품을 구성했다.

    그러면 작가님 개인은 어떤 때에 즐거움을 느끼는가.

    작가로서는 마지막 문장을 쓰고 송고할 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홀가분한 마음이 든다.

    일상에서는 침대에 누워 있을 때 가장 큰 즐거움을 느낀다. (웃음) 사실은 잘 모르겠다. 요즘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그럴 것 같은데, 일상에서 크게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일이 많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그냥 누워서 내가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것이 유희의 전부처럼 느껴진다. 빨리 나가서 놀 수 있는 그런 때가 오면 좋겠다.

    소설쓰기 자체를 놀이로서 즐긴다는 기분으로, 기존에 품고 있던 창작의 기준이나 선입견을 없애고 자유분방하게

    한 인터뷰에서 작가님의 첫 직장이 잡지사였고, 그곳의 직장 내 ‘갈굼 문화’에 대한 분노를 첫 소설집에 털어놓았다고 하셨다. 혹시 잡지사에서 일하는 주인공 ‘평화’에게 자전적인 요소가 반영되었는지 궁금하다.

    예전에 잠깐 잡지사를 다니기는 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나는 평화보다는 상식적인 사람이다. (웃음) 아무래도 소설의 화자인 평화는 관찰자에 가깝기 때문에 훨씬 더 위악적이고 신랄한 말투를 가진 인물로 설정했다.

    ‘바비의 집’에서는 직장 생활을 멀쩡하게 하던 ‘평화’와 모범생 소녀 ‘제니’가 서로의 마음속 균열을 발견하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평화와 제니같이 ‘내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는 캐릭터를 만들게 된 계기가 있는가.

    인간이라면 누구나 인정 욕구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타인에게서 오는 ‘인정’이라는 행위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면서 ‘내면이 깊고, 해소하기 힘든 사람일수록 인정 욕구가 절실한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런 질문들을 속으로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이런 캐릭터들을 만들어낸 것 같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천덕꾸러기가 된 바비의 집, 폐허가 된 놀이동산, 조각나고 망가진 인형들과 같은 소설 속 요소들은 유년기의 그림자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 같다. 이런 요소들에 숨겨진 의도나 의미가 궁금하다.

    어릴 적 가슴을 뛰게 했던 ‘놀잇거리’들을 떠올리며, 놀이동산, 인형의 집, 장난감 같은 오브제들을 구상했다. 어린아이의 잔혹한 장난 같기도 한 행동들, 인물들이 각자 무의식적인 내면의 문제를 해결하는 모종의 활동들을 나는 일종의 즐거움이라고 생각했다. 요소들이나 인물들의 행동에 대한 의미는 독자 개개인의 자유로운 해석에 맡기고 싶다. (웃음)

    소설의 결말 부분은 마치 ‘평화’의 꿈이나 환상으로 느껴질 만큼 비현실적이다. 이번 작품에서 현실과 비현실을 모호하게 표현한 이유가 있는가.

    기존에는 비교적 현실에 단단하게 발 붙이고 있는 작품들을 주로 썼다. 이번에는 소설 쓰기 자체를 놀이로서 즐긴다는 기분으로, 창작의 기준이나 선입견을 없애고 자유분방하게 쓰고 싶었다. 그래서 현실의 경계가 모호한 작품이 나온 것 같다.

    소설 쓰기가 업이 되고부터 다른 이들의 평가 같은 것을 많이 의식하게 되면서 좀체 새로운 시도를 하기가 두려웠다. 소설이 발표되는 플랫폼의 다양성 덕분인지 기존의 작품들에 비해 환상적이고 유연한 작품을 쓸 수 있었다.

    일상의 얇은 조각들을 꿰어 새로운 세계를 만든다

    게임은 상상을 스토리, 그래픽, 음악 등으로 구체화하지만, 소설은 언어만으로 허구의 서사를 독자에게 납득시켜야 한다. 소설에 담긴 세계의 구체성은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SF나 장르소설을 쓰는 작가들도 서사의 기본적인 구조나 갈등은 결국 일상의 관계에서 가져온다. 나는 특히나 리얼리즘 계열의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일을 쓰기 때문에 더더욱 그런지 모르겠지만 소설을 쓰는 영감은 주로 일상에서 얻는다. 사소한 대화나 물건,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 버스를 타고 가면서 본 풍경 같은 것에서 창작의 실마리를 얻는다. 그래서 영감을 떠올린다고 하기보다는 그때그때 일상의 순간과 생각을 많이 모아두고 그 조각들을 꿰어서 이야기를 엮는다.

    물론 초고를 쓸 때면 작가인 나도 허공을 헤집는 기분이라 답답하긴 하다. 그래도 뻗대고 앉아서 계속 열심히 쓰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새로운 세계가 서서히 그려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시간을 오래 들일수록 보다 구체적인 세계가 완성된다.

    시간을 들여 글을 쓰더라도 벽에 부딪히는 순간이 한 번쯤은 있을 것 같다. 그런 순간을 극복하는 방법이 따로 있는가.

    아무것도 안 한다. 누워서 TV보면서 딴짓하고 맛있는 거 시켜 먹고 그러다 보니 지금의 체형을 가지게 되었다. (웃음) 아니면 나 같은 경우는 작업할 때 카페를 많이 돌아다니는데, 다른 카페로 이동을 한다든가, 분위기를 환기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창작은 정신노동인 만큼 타개책이 별로 없다. 나는 그걸 포션이라고 하는데, 어떤 날 포션을 다 소진하면 물리적인 수단을 통해 회복하지 않는 한 다시 저절로 채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과감히 먹고, 자고, 놀면서 다시 일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기를 기도한다.

    글을 쓰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있다면 무엇인가.

    소설에도 여러 가지 기능이 있을 것이고, 사람에 따라서 소설에 원하는 바는 모두 다를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소설가로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재미이다. 일단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고 잘 읽히는 재미있는 작품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가장 크다.

    그래도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때 독자들이 ‘무언가’를 얻어갔으면 좋겠다는 원대한 소망 역시도 가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작품 속에서 가장 좋아하는 한 문장을 말해 달라.

    “‘바비의 집'은 미국의 전원주택을 본떠 만든 거대한 인형의 집이었다.”

    * 본 인터뷰에서 언급되는 내용은 인터뷰 당사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NCSOFT의 공식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