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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09 NC Cultural Foundation

    이유 있는 혁신

    에스더 워치츠키에 이어 두 번째 기조강연에서는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교육대학원 부학장이자 최고기술책임자(CTO)인 폴 김(Paul Kim) 교수가 연사로 나섰습니다. ‘이유 있는 혁신’을 주제로 창의와 혁신을 추구하는 근본적인 열정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컨퍼런스에서 발표한 내용의 원문을 공개합니다.

    * 기조강연1: 에스더 워치츠키 강연 원문 (링크)

    안녕하세요. 스탠퍼드대학교 교육대학원 부학장을 맡고 있는 폴 김(Paul Kim)입니다. 윤송이 이사장님께서 이 귀한 자리에 저를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동안 NC문화재단이 ‘프로젝토리’라는 멋진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해주셔서 앞으로 우리나라의 미래가 상당히 밝다고 기대합니다. 앞서 이광형 카이스트 총장님께서 축사를 해주셨는데, 제가 이야기하려는 내용과 결이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진행할 강연에서 비슷한 아이디어들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강연은 <이유 있는 혁신>이라는 제목으로 준비했습니다. 제가 21년 동안 스탠퍼드대학교에서 만난 인재와 학생들, 수많은 혁신적 사례에 관한 이야기를 공유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자료를 뽑아 왔습니다. 저의 생각도 많이 들어 있습니다. 저는 언제나 모든 혁신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강연 제목을 <이유 있는 혁신>으로 지었습니다. 세상의 많은 분야에서 혁신을 추구하고 갈망하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그 이유는 ‘공공의 선’과 관련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공공의 선이 배제된 혁신과 지성은 사회의 독이 되거나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혁신에 속한 창의성은 공공의 선을 추구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래서 창의성에 관한 몇 가지 사례를 들면서 이야기를 풀어가겠습니다. 이미 많은 분이 알고 계시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어떻게 생겨나는지를 유심히 관찰해보면 천재적인 창의력을 지닌 인물이 혼자 고민하여 도출해내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봤을 때는 여러 사람이 협력하며 공공의 선을 이루는 일들이 훨씬 지속가능성이 높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사는 리처드 밴 애스(Richard Van As)라는 사람이 어느 날 손가락 절단 사고를 당했습니다. 손가락을 잃은 그는 인공관절 손가락으로 대체하는 방법을 알아봤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아이번 오언(Ivan Owen)이라는 미국인을 알게 되었습니다. 리처드는 아이번이 인공관절 손을 개발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연락했습니다. 그들은 연락을 주고받으며 3D 프린팅 기술로 인공관절 손가락을 개발했습니다.

    인공관절은 손가락 상태와 잘 맞고 불편 없이 물건을 집을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무거운 물체를 잡아도 떨어뜨리지 않게 설계해야 합니다. 부러지지 않고 고장이 잘 나지도 않아야 합니다. 그래서 인공관절 손가락을 만드는 일에는 엔지니어링, 재료공학, 물리학 등 여러 가지 지식이 필요합니다. 이 때문에 두 사람은 3D 프린팅 기술로 인공관절 손가락을 제작하면서 많은 실험을 하고 실패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마침내 제작에 성공했습니다.

    두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손가락이 기형인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리암(Liam)이라는 5살짜리 꼬마는 손가락이 없이 태어났습니다. 그들은 이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또다시 개발을 시작하여 인공관절을 이용한 손가락을 만들어주었습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니 다리가 부러진 동물들의 사례도 많이 접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Enabling the Future’라는 재단을 만들었습니다. 리처드는 딸과 함께 활동하며 수천 명의 아이와 동물들에게 인공관절을 제공했습니다.

    또다른 사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사진은 제가 실리콘밸리에서 수업하며 찍은 것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이 종이로 로봇을 만들었습니다. 로봇같이 보이게끔 많이 노력했는데 괜찮아 보입니다. 더 예쁘게, 더 인간적으로 만들 수도 있었겠네요.

    학생들의 선생님은 한 학기 동안 공공의 선을 실현할 수 있는 디자인 프로젝트를 구성해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저기 있는 남학생은 라지 파리크(Raj Parik)입니다. 숙제를 고민하던 이 학생은 몇 년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떠올렸습니다. 할아버지는 심장마비로 병원에 입원했는데 심장혈관 수술을 받다가 사망했습니다. 그래서 라지는 심장혈관 수술을 훈련하는 세트를 만들어보자고 결심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러한 세트로 훈련하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에게 관련 지식을 전하고 공부하는 기회를 제공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래서 라지는 학기 내내 팀원들과 세트를 만들었습니다. 물론 많은 시도와 실패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학기가 끝날 무렵, 각 팀이 자신들이 만든 프로젝트 결과를 전시하고 설명하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라지와 팀원들은 종이 박스로 만든 사람 모형의 가슴에 3개의 구멍을 뚫었습니다. 한 구멍에는 웹 캠이 달린 막대기를 넣고 나머지 두 구멍에는 집게들을 달고, 실제 복강경 수술하는 과정을 시연했습니다.

    여러분은 초등학교 5학년 때 그런 활동을 해보셨나요? 저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저는 초·중·고등학교를 한국에서 다녔는데 야단맞은 기억밖에 없습니다. 공부를 너무 못해서 하위 1%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학생들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이런 일을 했습니다.

    자료를 보면 라즈베리 파이(Raspberry Pi)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장치와 서버를 이용하면 복강 내시경 카메라를 연결해서 모니터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이 한창 시연하는 도중 갑자기 화면이 꺼져버렸습니다. 저는 이들이 어떻게 반응할까 궁금했습니다. 한 학생이 “서버가 꺼졌으니 빨리 리부트해야 돼”라고 말하고는 다시 조작하더니 서버를 리부트하고 카메라를 연결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이 아이들이 한 것이 맞구나, 누가 도와준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해낸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 수술 세트는 상당히 정교했습니다. 3D 프린터로 사람의 인공심장을 프린트한 뒤에 거기에 혈관들을 연결하고, 그 안에 있는 혈전을 복강경 수술로 꺼내는 과정을 전체적으로 시연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학교에서 대상을 받았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라지는 마음속에 바람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팀이 만든 복강경 수술 시연 세트 같은 것이 있으면 많은 학생이 볼 수 있고, 의료공학에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또 심장 질환과 혈관 제거 수술 등에 대한 관심도 커지지 않을까요? 라지는 앞으로 많은 학생이 의료계 진출에 관심을 갖기를 바란다고 말하며 발표를 마쳤습니다. 유능한 의료진이 더 많아져서, 자신처럼 심장마비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갑자기 잃는 일이 사라지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다음으로 소개할 사람은 마누 프라카시(Manu Prakash)라는 청년입니다. 이 청년은 소외된 지역을 많이 돌아다녔는데, 특히 의료 환경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개발도상국과 사각지대에는 병원이나 의료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고 열악한 곳이 많습니다. 청년이 살펴보니 그런 지역에는 현미경이 없었습니다. 현미경이 부서져 있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선진국에서는 흔한 현미경이 개발도상국에서는 고가 장비였습니다. 의료 기관, 학교 실험실 등에 널리 보급되지 않고, 그나마 있는 것도 고장 난 채로 방치돼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누는 어떻게 하면 값싸면서도 해상도 높은 현미경을 보급할 수 있을지 궁리했습니다. 또한 고장 나면 수리해서 쓰기보다 새로운 것을 쓰는 방법에 관해서도 고민했습니다. ‘개발도상국에서 장비가 필요하면 돈을 보내주면 되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장비를 사서 보내주면 되지 않을까?’ 얼핏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건 상당히 단순한 생각입니다. 돈을 들여서 현지에 뭔가를 보내면 실제로는 더 큰돈을 들여야 유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급 장비를 보내도 숙련된 관리자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작은 부분이라도 고장 나면 부품이 없고 수리할 여건이 안 됩니다. 그래서 기부받은 장비도 창고에서 녹슬기 십상입니다.

    이런 상황들을 고려한 마누는 종이접기 현미경을 발명했습니다. 종이를 펴면 해상도가 꽤 높은 현미경이 됩니다. 가격은 단돈 500원입니다. 덕분에 값비싼 현미경 몇 개가 아니라 수천 개의 종이 현미경을 여러 기관에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각종 질병에 맞도록 현미경 종류를 다양하게 개발했습니다. 또한 다른 물질을 연구하기 위해 개발을 이어갔습니다. 더 살펴보니 말라리아나 에이즈 같은 질병을 분석하는 장비나 혈장분리기도 필요했습니다. 혈장분리기는 원심분리기입니다. 혈액을 빠르게 회전시켜 혈장을 분리하는 장비입니다. 의료 장비를 만들려면 고속 모터가 필요하고 전기도 필요합니다. 물론 그런 것은 없었습니다. 열악한 상황을 마주한 마누는 새롭고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그러던 중 조카들이 실을 원판에 달아서 당기면 윙 하고 돌아가는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을 보았습니다. 혹시 여러분도 가지고 놀아보셨나요? 저도 어릴 때 단추를 넣어서 돌리고 놀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마누는 그 장난감이 무척 빨리 돌아간다고 생각하고는 실과 종이로 원심분리기 만드는 방법을 궁리하기 시작했습니다. 비싼 원심분리기는 회전속도가 분당 수천 번 정도 됩니다. 그런데 마누가 단돈 200원으로 만든 혈장분리기는 분당 12만 5,000번 회전했습니다. 정말 값싸고 성능 좋고 쉽게 만들 수 있는 원심분리기를 발명한 거죠. 마누는 원심분리기 몇 개 살 돈으로 수만 개의 값싼 원심분리기를 전 세계에 보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은 지금 어디 있을까요? 혹시 아시는 분 있나요? 우리 스탠퍼드대학교가 영입해서 지금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스탠퍼드는 이처럼 창의적인 생각을 끊임없이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었습니다. 마누는 지금도 열심히 창의적인 물품들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창의적인 활동에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유 있는 혁신은 여러 단계를 거치게 됩니다. 그러려면 먼저 그 이유를 알아야 됩니다. 필요를 가슴으로 느끼고 혁신의 이유를 깨닫는 게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어떤 이유를 접하더라도 가슴속에 별다른 느낌이 없으면 그저 지나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게 있구나”, “저런 도움이 필요하구나”, “저런 어려움이 있구나”, “저런 고통이 있구나” 하고 그냥 지나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개발도상국에서 고통이나 불편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무엇이 절실히 필요한지, 사람들이 어떤 고통과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어떤 창의적 생각과 혁신이 그들의 삶을 바꿀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함께 생활하고 아파하며 피부로 느끼면 그 이유를 절실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혁신의 진정한 이유를 마음에 새기는 것이 가장 중요한 1단계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단계는 관찰하는 것입니다. 문제 자체 혹은 문제가 있는 생태계의 근본적 원인을 관찰해야 합니다. 문제가 있는 조건, 현재 존재하거나 가능한 해결 방법, 비용 등을 유심히 관찰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세 번째 단계는 끊임없는 질문입니다. 아까 이광형 카이스트 총장님께서도 질문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끊임없는 가정적 질문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이런 것이 있다면 어떨까? 만약 조건이 바뀌면 어떨까? 방법을 바꾼다면? 또는 비용이 적게 들도록 한다면? 이러한 ‘what if?’ 같은 가정적 질문을 통해 해결 가능성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네 번째 단계는 포기하지 않고, 실수하면서 계속 시도해보는 것입니다. 상상하는 대로 여러 가지를 디자인하고, 모양을 바꿔보고, 크기도 바꿔보고, 배경이나 색상도 바꿔보고, 재료나 재질도 바꿔봅니다. 프로토 타입이 생각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수정하고, 변형하고, 발전시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다 보면 생각과 정반대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거든요. 그때는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출발합니다. 이러한 시도를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반복하는 게 중요합니다.

    창의와 혁신을 추구하며 공부하고 생각하는 모든 분, 학생들, 특히 어린이들에게 이 말을 꼭 해드리고 싶습니다. 이유 있는 혁신을 추구하되 나만의 것이 아니고 극단적 사상 등에 동요한 것도 아니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공공의 선이 될 수 있도록 고민해보시기 바랍니다.

    창의 교육에 관심을 가진 분들이라면 앞에서 말씀드린 1~4단계를 어렵지 않게 이해하시리라 생각합니다. 그 중에서 이광형 총장님께서도 강조하신 ‘질문’과 관련하여 제가 한 일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저는 2010년에 스마일이라는 시스템을 개발했습니다. 스마일은 <SMILE: Stanford Mobile Inquiry-based Learning Environment>라는 질문 플랫폼입니다. 저는 질문 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곳에서는 창의 문화가 나올 수 없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가정적 질문을 마음대로 공유하고, 서로 분석하고, 서로 평가하고, 서로 풀어보는 플랫폼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가정적 질문이라는 게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상위 인지능력과 메타 인지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이것이 뇌의 과부하를 유발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자주 해보고 접하다 보면 좀 더 수월해지기도 합니다.

    폴 김 교수가 개발한 “SMILE(Stanford Mobile Inquiry-based Learning Environment)”

    프로세스는 이렇습니다. 학생들이 질문을 만드는데 거기에 그림이나 동영상을 넣을 수도 있고, 완성된 질문을 공유합니다. 그다음에는 팀이나 클래스에서 서로 문제를 풀어봅니다. 그리고 평가합니다. “너의 질문은 상당히 좋은데 이렇게 하면 더 발전시킬 수 있겠어” 또는 “너의 질문은 그 정도면 됐는데 이 단어를 사용하면 어떨까?” 하는 식으로 아이디어를 공유합니다. 스마일에는 많은 지식 분야에 대한 창의적 질문이나 사고의 확장을 유도하여 전에는 생각하지 못한 질문들을 과감하게 하도록 돕는 프로세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국 S사에서 스마일을 활용해 워크샵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구글에서도 워크샵을 진행해봤는데 S사와는 어떻게 다를지 궁금했습니다. 혹시 여기 계실지도 모르겠네요. S사 중역들에게 “질문을 만드세요”라고 했는데 질문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불편하신 데가 있습니까? 질문이 왜 안 올라올까요?” 그랬더니 그분들은 “아이디어는 많습니다. 아이디어도 많고, 엄청나게 창의적인 질문도 많이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플랫폼에 제 이름이 안 나오면 안 될까요?” 이렇게 이야기하더군요.

    그래서 ‘질문과 이름이 나오면 뭔가 두렵구나’, ‘내가 잘 모르는 문화가 있구나’, ‘이것이 문화의 차이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저도 초·중·고등학교를 한국에서 나왔는데, 괜한 질문을 했다가 혼난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문화가 회사에도 영향을 미쳤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는 여러 분야에서 이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학교의 여러 과목, 기업 교육 등에서도 진행했는데, 질문을 같이 만들면 너무 좋습니다. 질문의 퀄리티가 뛰어나고, 창의적인 생각이 섞여서 더 좋은 질문을 만들 수 있게 됩니다.

    구글은 2015년에 ‘도리(Dory)’라는 시스템을 만들어 회사 전체에 공개했습니다. 저는 구글이 놀라운 시도를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니모를 찾아서>라는 영화를 보셨나요? 이 영화에 ‘도리’라는 물고기가 나옵니다. 파란 물고기죠. 도리는 극 중 자꾸 까먹어서 자꾸 물어보는 물고기입니다. 그래서 구글은 영화에서 착안해 시스템 이름을 도리라고 붙이고 모든 직원이 마음껏 질문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구글 직원들은 “지금의 검색엔진이 앞으로 10년, 20년 후에도 경쟁력이 있을까요?” 아니면 “인공지능을 활용한 검색엔진은 어떤 모습일까요?” 등 엄청난 질문들을 했습니다. 그리고 각자가 올린 질문에 대해 평가를 합니다. 서로 별표를 주고, 별 5개가 모이면 질문이 올라갑니다. 별표를 많이 받은 질문에는 CEO가 직접 답변합니다.

    저는 ‘도리라는 시스템을 시도한 구글은 정말 대단한 회사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질문하세요”라고 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질문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대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한국에서 많은 강연을 했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질문받겠습니다”라고 말하면 질문이 많았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질문이 없어서 저는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생각하며 식은땀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자유롭게 질문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려면 엔지니어링이 필요합니다. 저의 책에 ‘컬처 엔지니어링(culture engineering)’이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컬처는 엔지니어링을 통해서 심어진다는 것입니다. 지속가능한 문화를 만들려면 그만큼 엔지니어링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교육적 입장에서는 혼자서 생각하고 고민하고 발전시키기보다는 탁구 치듯이 여러 사람과 계속 창의적 질문들을 만들고 같이 풀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상황과 문화가 정착할 때 창의적 아이디어가 많이 나온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학교에서 하고 있는 것과, 하면 좋은 것들을 구분해보면 교육에 관심 있는 분들을 아실 겁니다. 학교에서 하는 활동은 사실 주입식, 단답형, 암기식이 많습니다. 이해하고 기억하고, 그다음 또 잊어버리는 활동이 중요하다는 것은 저차원적 생각입니다. 고차원적인 생각은 학생들이 뭔가 적용하고, 분석하고, 평가하고, 만드는 것입니다.

    제가 만든 스마일 시스템의 재미있는 기능 중 하나는 ‘프롬프터’입니다. 잠시 보여드리겠습니다. 질문을 만들기 전에 그룹을 만들겠지요. 수업에서는 클래스가 될 것입니다. 팀이라면 팀의 이름을 정합니다. 그다음 이것은 ‘어떠한 활동이다’라고 이름을 정합니다. 활동을 시작하면 프롬프터를 세팅하고 단어들을 집어넣습니다. 임의적 단어를 생각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 과학을 공부했다면 연관 있는 단어들을 넣습니다. ‘Lift(양력), Weight(중력), Thrust(추진력), Drag(저항력), Density(밀도)’ 등의 단어를 넣습니다. 저는 파일럿이기 때문에 항공과 연관된 과학적 단어들도 자주 사용하며 ‘Altitude(고도)’ 등을 넣기도 합니다.

    프롬프터의 단어 목록 중 2개의 단어를 임의로 제안합니다. 다음과 같이요. “Lift(양력), Drag(저항력) 두 단어를 사용하여 질문을 만드세요.” 학생들이 두 단어에 대해 공부했다면 질문을 만들 수 있겠죠. 여기에 ‘If’를 사용한 가정적 질문을 하게 됩니다. “만약 저항력(Drag)이 증가하면 어떤 힘이 더 늘어나야 양력(Lift)의 총량이 유지될까”라는 질문이 나올 수도 있겠네요. 괜찮은 질문이죠. 질문에 ‘Lift’와 ‘Drag’가 있기 때문에 시스템은 질문을 받아들입니다. 만약에 두 단어가 들어가지 않은 질문을 올리면 시스템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예컨대 “저항력(Drag)이 줄어들면 가속도(Acceleration)를 증대시킬 수 있나요?”라는 질문에는 Lift라는 단어가 없기 때문에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학생들이 질문을 자유롭게 만듭니다. 그날 대화한 내용과 특정 주제에 관해 자유롭게 질문을 만들고, 누가 더 창의적으로 질문했는지 경쟁함으로써 효과가 발생합니다. 이것을 Open-Ended 질문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다음 이 플랫폼으로 멀티플 초이스(Multiple Choice) 질문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방법들을 과학 외에도 다른 많은 분야에서 시도했습니다. 스탠퍼드대학교는 물론 많은 대학교가 채택했습니다. 개발도상국의 여러 초·중·고·대학교에서도 이 시스템을 적용했습니다. 에티오피아 학생들의 질문을 모아봤습니다. 단답형이 많습니다. “몇 년도에 이탈리아가 에티오피아를 침공했습니까?” 그곳 아이들도 “우리나라에서 임진왜란이 일어난 해는?”과 비슷한 질문을 합니다. 

    그런데 창의적인 질문을 하고 나면 아이들이 과감해집니다. 그전에는 하지 않았던 질문들을 과감하게 하게 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다음은6개월 정도가 지난 후 초등학교 5학년 여학생이 만든 질문입니다. 이 질문을 보면서 상당히 감동받았습니다. “과연 우리나라 헌법에 여성의 인권을 보장하는 항목들이 있는지?” “우리의 헌법은 여성의 인권을 보장하는지?” 이런 질문들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런 질문을 해도 될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6개월이 지나자 아이들이 마음대로 질문하는 것입니다. 과학이든, 역사든, 정치적이든, 언어적이든 많은 분야의 질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스마일 프로젝트는 창의적 생각뿐 아니라 고차원적 생각을 하기 위해 두뇌를 자극하는 플랫폼입니다. 또한 익숙하지 않았던 부분들에 대해 더 익숙해지고 두려움을 없애도록 해줍니다.

    그래서 똑같은 것이 아니라 색깔과 모양이 뭔가 다른 질문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제가 보기에 창의성은 태도이자 여정입니다. 저는 ‘태도’라는 단어를 자주 이야기합니다. 저의 책 『다시 배우다』에서 강조한 말도 ‘태도는 확률을 이긴다’라는 것입니다. 제 삶을 증명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하위 1%로 초·중·고등학교를 나온 사람이 스탠퍼드대학교 교육대학원 부학장을 하게 된 원인 중 하나는 ‘태도는 확률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이길 수 있다’라는 생각입니다. 창의성은 태도이자 여정이라고 말씀드립니다.

    여러분! 화학을 공부하시거나 시사에 밝은 분이라면 아실 것입니다. 암모늄 나이트레이트(질산암모늄, Ammonium Nitrate)라는 물질이 있습니다. 이 물질이 만들어지기까지 엄청난 창의성과 긴 여정이 필요했습니다. 질산암모늄은 세상의 굶주림을 줄이기 위해 비료로 활용될 수 있지만, 조금만 바꾸면 폭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제가 몇 주 전 레바논에 가서 시리아 난민 아이들과 스마일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도중에 큰 사건이 터졌습니다. 레바논 항구에 정박한 배에 방치되어 있던 질산암모늄이 폭발하여 주변이 모두 무너졌습니다. 제가 직접 가서 봤는데 너무나도 참혹하고 안타까운 현장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30만 명이 집을 잃고 다른 곳으로 이주해야 하는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질산암모늄은 혁신적인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전 세계의 굶주림을 줄이기 위해 쓰이지만 엄청난 폭발력 때문에 많은 사상자를 낼 수도 있는 물질입니다. 이처럼 새로움을 만드는 창의성은 다양한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진정한 교육자라면 창의성을 교육할 때 좋은 이유들, 혁신의 이유들에 관해 공감하고 생각을 나누면 좋겠습니다.

    <Chaos and Dreams Yet to Come> Liam O’Callaghan (2005)

    오랫동안 강의를 들으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이 작품을 여러분과 나누며 마치려 합니다. 리엄 오켈리건(Liam O’Callaghan)의 작품입니다. 유리들을 바닥에 놓고 깨뜨린 작품입니다. 여기에 빛을 비추면 깨진 유리를 통해 엄청나게 아름다운 작품이 벽에 나타납니다.

    제가 이 작품을 처음 본 순간 느낀 것은 우리 자신과 너무도 비슷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깨져 있을 수도 있고, 상처받았을 수도 있고, 완벽하지 않고, 깨져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버려야 할 조각일지도 모릅니다. 너무나도 볼품없이 깨져 있지만, 이것들이 모여 협력하면 저런 멋진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창의성과 교육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완벽을 추구하기보다 우리의 나약함과 부족함을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부족한 우리도 빛을 반사해서 멋지고 창의적인 세상과 작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더 나은 세상을 함께 살 수 있는 계기와 통로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우리가 그러한 여정을 함께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게 해주었습니다. 지금까지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