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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6.01 Creator Crew

    NC FICTION PLAY | 영감은 오랫동안 고민해 온 물음에 대한 직관의 답이다 ‘수요 곡선의 수호자’ 배명훈

    Creator Crew:

    엔씨의 콘텐츠와 자신의 크리에이티브를 연결해 즐거움을 확장시키는 사람들

    엔씨의 < NC FICTION PLAY >에서는 배명훈, 장강명, 김금희, 김초엽, 김중혁, 편혜영, 박상영, 국내 대표 일곱 명의 소설가들이 쓴 즐거움의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로 엮었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로 독자들은 작가들의 일곱 가지 이야기를 보고, 듣고, 경험하며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넘어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고 상상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수요 곡선의 수호자'라는 흥미로운 제목의 작품을 선보인 배명훈 작가는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매 작품마다 신비로운 세계관을 그려내며, 국내에서 대중적으로 주목받는 SF작가로 손꼽혀 왔습니다. 이번 작품에서 그는 즐거움을 소비함으로써 세계를 구원하는 로봇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즐거움과 첨단 기술의 미래에 대해, 공급과 소비의 균형에 대해, SF작가로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 NC FICTION PLAY 입장하기 → https://about.ncsoft.com/fictionplay


    즐거움은 몰입이다. 빠져들게 만드는 것, 자꾸만 눈이 가게 만드는 것

    이번  < NC FICTION PLAY >에서 소개한  '수요 곡선의 수호자'는 어떤 작품인가?

    ‘마사로’라는 로봇에 관한 이야기다. 현실에서 로봇이나 인공 지능이 인류에 위협이 되는 건 주로 공급 부분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인데, 이 소설에서는 이런 불균형에 맞서기 위해 소비하는 로봇이 등장한다. 소비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는 로봇의 이야기다.

    게임 회사인 엔씨의 프로젝트 제안을 받았을 때 처음 든 생각이 무엇이고, 참여를 결정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재미있는 기획이라고 생각했다. ‘즐거움’이라는 키워드는 내가 소설을 쓸 때도 늘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그래서 ‘나하고도 잘 맞고 잘할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SF작가로서 SF소설과 게임이 지금보다 훨씬 더 가까워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럼 게임이라는 장르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별다른 진입 장벽 없이 새로운 세계로 쉽게 넘어갈 수 있다는 점 아닐까. 나는 아무 이유 없이 드래곤이 나오면 다 좋아한다. 현실에는 드래곤이 없고, 소설에 등장해도 ‘왜 동양 용이 아니고 서양 용이냐’ 묻는다면 골치가 아플 수 있는데, 게임에서는 아무래도 상관없지 않나.

    드래곤뿐만 아니라 어떤 새로운 규칙을 적용한 게임에서 ‘왜 여기는 이런 규칙이 적용되지?’ 하고 유저가 물어보진 않는다. 그게 강점인 것 같다. 다른 세계를 상상하고 그 세계에 몰입하게 만드는 콘텐츠 중에서 게임은 그냥 하면 되는 것, 그게 특권인 것 같다.

    < NC FICTION PLAY >의 키워드는 즐거움이다. 작가님이 생각하는 즐거움은 무엇이며, 이번 소설에는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궁금하다.

    즐거움은 몰입이다. 빠져들게 만드는 것, 자꾸만 눈이 가게 만드는 것. 소비하는 로봇이 제 기능을 하려면 인간이 만든 것들을 정말로 즐길 수 있어야 했고, 감정을 느낄 수 있어야 했다. 처음에는 수많은 감정 중에서 공포를 재현해 내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즐거움이라는 감정을 이해한 다음에야 우리의 소비 로봇은 진짜 소비를 할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인간의 역사에서도 감정 중에서 생존에 깊이 관련된 공포가 제일 먼저 탄생했기 때문이다. 공포가 다르게 진화가 되려면 애를 쓰고 스트레스를 받는 감정을 줄여야 하는데, 그때 해방되는 감정들이 있다. 공포의 반대쪽에 있는 즐거움과 행복, 만족과 같은 것들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마사로’라는 로봇의 감정이 개발이 된다.

    작가님은 어떤 순간에 즐거움을 느끼는지, 소설을 쓰면서 특별히 즐거운 순간이 있다면 언제인지 궁금하다.

    글쓰기 자체가 대체로 즐겁다. 직업이 작가가 아니었어도 누가 한 달 휴가를 주면 소설을 썼을 것 같다. 취미였다가 직업이 돼서 그런데, 직업의 괴로움이 글쓰기라는 영역을 침범하지 않도록 애쓴다. 마감에 쫓기지 않도록 미리미리 한다거나, 원고 청탁이 들어오기 전에 아무도 안 시킨 글을 써둔다거나 하는 식으로.

    “마사로, 다시 가서 세상을 구해”

    주인공 '마사로'는 로봇이면서 자신의 존엄성에 대해 얘기한다. 미래에는 '마사로'처럼 자아가 있는 로봇이 등장하리라 생각하는가.

    실제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작가들은 백 년이 넘도록 자아가 있는 로봇을 상상했다. 아직 실현되지 않은 상상이지만, 지금도 많은 작가들이 비슷한 상상을 하고 있다. SF 작가에게 인공 지능이나 로봇은 실제 실현 가능성 이상으로 다양한 의미를 지닌 존재다. 인간을 돕기 위한 도구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됐기 때문인데, 이 새로운 존재들이 할 수 있는 일 중에는 인간이 감히 넘볼 수 없을 만큼 고상하고 위대한 일들도 많을 거라 믿는다. 인간이 이해하기 힘든 방식으로. ‘마사로’도 그런 존재 중 하나다.

    작품의 골자인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라는 것은 경제학의 기본 가정 중 하나이다. 작가님은 이 이론이 먼 미래에 더 이상 쓸모없게 된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라는 것도 일종의 신화가 아닐까. 현실에서 이 균형은 너무 자주 깨지고, 균형을 잡으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균형을 상상하는 것 자체가 벌써 이상적이기도 하고.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생겨난, 손상 없이 복제 가능하고 희소성 없는 재화들이 경제학의 기본 가정을 바꿔 놓을 거라는 전망을 들은 것도 벌써 수십 년 전인 것 같다.

    이 소설을 쓰면서 주목한 건 인공 지능 기술에 관한 논의가 거의 대부분 생산자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었다. 다소 순진할지는 몰라도 누군가 균형을 상상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고, 그렇다면 수요자의 관점에서 인공 지능을 상상할 필요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순진한 상상이라면 소설가가 먼저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고.

    이번  '수요 곡선의 수호자'에서 인간의 내면 세계나 종교에 관한 주제도 빼놓을 수 없다. '마사로'와 같은 인공 지능이 등장하는 미래에도 사람들은 신을 믿을까?

    당연히 믿기도 하겠지만, 그것과 관계없이 인간은 언제까지나 신을 상상할 것이다. 로봇을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랫동안 상상해 왔으니까. 인공 지능을 개발하는 것만큼이나 신을 상상하는 행위도 인간의 중요한 발명일 것이다. 기껏해야 다른 개체보다 조금 뛰어난 존재를 보고 신만큼이나 위대한 무언가를 떠올린 것이지 않나. 지녀본 적 없는 탁월함을 사고하려고.

    열반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 '유희'와 소비와 예술을 즐기는 로봇 '마사로'를 보면 인간과 인공 지능이 서로 뒤바뀐 듯한 느낌도 든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건 무엇인가.

    인간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필연적으로 해야만 하는 일에서 벗어나 가끔 무의미한 대상에 몰두하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순간 같은 게 아닐까. 설계와 예측을 벗어난 존재가 되는 거니까. 반면 인간을 초라하게 만드는 것은 인간이기에 갖고 있는 여러 한계다. 수명의 한계, 인지의 한계, 개체이기에 겪게 되는 공감의 한계 같은 것들. 인공 지능이 그 한계를 대신 뛰어넘어 주기를 바라는 것은 SF 작가가 지닌 자연스러운 소망일지도 모르겠다.

    작가님의 작품에는 수직으로 상승하고 하강하는 이미지가 반복해서 등장한다. 이번 작품에서도 심해도시에서 상승하고 하강하는 이미지가 그려지는데 어떤 의도나 배경이 숨어 있는지 궁금하다.

    나도 답은 잘 모르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삶의 공간과는 조금 다른 삶의 조건을 상상하는 과정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다른 곳에 놓였을 때 우리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하는 질문을 사회학적인 규모로 던지는 일이라고 할까. 보지 않았던 방향으로 시선을 옮기고 걷지 않았던 곳으로 모험을 떠나고 궁금해하지 않았던 질문을 떠올려 보는 거다. 개인이 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그런데 사실 작가는 자기가 뭘 썼는지 잘 모른다.

    즐거움이라는 감정을 이해한 다음에야 우리의 소비 로봇은 진짜 소비를 할 수 있게 된다

    게임이나 영화 같은 매체와 달리 소설은 오로지 언어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 독자들을 몰입시켜야 한다.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 구체화하는 작업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세계를 보여주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세계를 자세하게 묘사해서 눈앞에 보여주는 거고, 다른 하나는 그 세계의 규칙이 작동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소설은 표현의 제약이 많지만 어떤 세계의 사람들이 어떤 규칙을 내면화하고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는 데는 꽤 효율적일 수 있다. 삶 자체를 길게 길게 다루는 데는 강점이 있으니까.

    게임도 비슷한 면이 있지만, 해상도가 높아야만 세계를 잘 보여줄 수 있는 건 아니고, 아주 단순한 디자인이라도 재미있는 규칙이 잘 작동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으면 구체성을 얻을 수 있다. 현실 세계의 규칙이 작품 안에서도 작동하면 심지어 현실적이라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고.

    'SF'라는 장르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면서 동시에 독자들을 설득할 자료나 소스가 필요 할 것 같다.

    확실히 공부를 해야 하는 장르다. SF작가로 살다 보면 다양한 기회들이 주어지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과학자와 대화를 하거나, 나로호 우주 센터를 견학할 기회, 천문대에 가서 생활할 수 있는 기회들이 생긴다. 하지만 실제로 내가 더 궁금하고 흥미로운 건 과학적인 지식보다 ‘과학자는 대체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생활을 할까?’ 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어떤 등장인물을 미지의 새로운 세계에 던져 놓고 캐릭터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아갈까 고민하다 보면 그때부터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나는 어떤 질문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가’이다.

    그럼 작품을 쓰다 벽에 부딪히면 어떻게 대처하고 극복하는가.

    슬럼프라는 건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어서 그냥 일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첫 문장이 안 나와서 괴로운 기간 동안 머릿속에서는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으니까. 그게 없으면 작품이 안 나오기 때문에, 슬럼프를 위한 시간을 미리 마련해 두고 마음 편하게 보낸다.

    글을 쓰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있다면 무엇인가.

    독자가 읽었을 때 즐거운, 해피 엔딩인 작품을 쓰는 것이다. 의외로 소설가 중에는 즐거움을 무기로 하는 작가가 적은 편이다. 일반적으로 슬픈 이야기나 무거운 이야기가 더 좋은 평가를 받기도 하고. 그래도 희소가치가 있기 때문에 나는 계속 즐겁게 쓰려고 노력한다. 쓰는 사람이 즐거워야 읽을 때도 즐거워서 이왕이면 나도 즐겁게 일을 해야 결과가 좋더라.

    현대인들이 생산과 효율성에 대한 강박이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인공 지능 개발도 생산의 효율성, 공급에 치중한다. 쓸모를 중요시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소설을 쓰는 일, 창작은 어떻게 보면 이런 생산성이나 실용성하고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하는 일이 가치가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열심히 일하는 만큼 열심히 즐겨야 세상이 좀 더 균형 잡히고 더 살기 좋아지지 않을까.

    이번 이야기를 소개할 때 주로 로봇 마사로에 초점을 맞췄지만, <수요 곡선의 수호자>는 마사로만의 이야기가 아니고 인간 유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유희 또한 스스로 답을 구하는 수행의 과정을 거치고 있었기에 마사로를 알아볼 수 있었고, 그래서 마사로를 놓칠 수 없었다. 결국 세상을 구하는 건 그런 마음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작품 속에서 가장 좋아하는 한 문장을 읽어달라.

    “마사로, 다시 가서 세상을 구해.”

    * 본 인터뷰에서 언급되는 내용은 인터뷰 당사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NCSOFT의 공식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