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에서 아트의 역할은 어디까지일까요. 게임 플레이 자체의 재미에 앞서 아트가 주는 인상은 그만큼 강렬합니다. 게임 아트는 첫인상 뿐만 아니라 내러티브를 이끌어 나가는 큰 축이기도 합니다. 아트가 상상을 시각으로 연결하면서 이야기를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리니지W〉는 플레이에만 집중하다 보면 볼 수 없는 곳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담은 요소들을 배치합니다. 지난 3년간 이렇게 세세한 부분까지 고민하면서 W만의 아트를 일관되게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그 결과, 〈리니지W〉가 3주년을 기념하여 세계관과 비주얼을 집대성한 아트북을 출간합니다. 특히나 이번 아트북은 10월 2일부터 10월 27일까지 사전 예약 주문을 통해서만 구매할 수 있는 특별 소장 한정판입니다.
〈리니지W〉 세계의 모든 것을 담은 이번 아트북을 제작하게 된 기획 의도와 함께 지난 3년간 〈리니지W〉만의 아트를 만들기까지의 과정을 〈리니지W〉 캠프의 최용철 AD에게 들어봅니다.
〈리니지W〉 아트북 제작 의도, 의미
초기 개발 때부터 일관된 주제 ‘리니지’, ‘클래식’, ‘내러티브’로 이어진 아트의 집대성
게임에서 볼 수 있는 고서 느낌의 프레임, 서체, 캐릭터 선택 페이지 등 세세한 부분이 아트북에도 고스란히 담긴 듯하다.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 같은데, 아트북을 제작한 기획 의도가 궁금하다.
〈리니지W〉는 처음 기획했을 당시부터 ‘리니지’, ‘클래식’, ‘내러티브’ 라는 3개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아트를 만들어왔다. 초창기 PC 시절부터 〈리니지〉가 가진 고유의 특징을 간직하면서도 〈리니지W〉만의 색깔을 만들고자 했다. 중세 판타지를 배경으로 하는 〈리니지W〉 세계의 리얼함을 살리기 위해서 여러 자료를 수집하고 고증하는 과정을 거쳤다. 유럽 중세 특유의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를 살리는 데 중점을 두었다.
그런 노력의 결실인지 3년 전인 론칭 시점에도 완성도 있는 아트 작업물이 많이 쌓여 있었다. 게임 안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세계관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 그동안 거쳐왔던 노력과 결실들을 대중과 플레이어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이번 아트북을 준비했다.
말씀하신 키워드를 보니 〈리니지W〉의 클래스가 전형적인 미형으로 일원화되지 않고 다채롭게 구성된 부분이 이해된다. 캐릭터를 디자인할 때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지 알고 싶다.
게임 전반의 방향성에 맞춰 초반에는 아트의 이미지를 설정하고 그 후 캐릭터에 대한 톤 앤 매너를 잡아갔다. 먼저 각 클래스의 비주얼에 적합한 참고 자료를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비주얼을 구축하기 위한 프레젠테이션을 여러 번 거쳤다.
각 클래스마다 처음 플레이하면 볼 수 있는 내러티브 인트로 영상도 아트에서 먼저 제안한 것이다. 보통 게임적인 요소로 그냥 지나치는 개연성에 관한 질문들, 가령 ‘이 캐릭터가 좋은 환경에서 자랐다면 굳이 거친 필드에서 몬스터를 잡으러 다니지 않을 텐데, 왜 이런 공간에서 싸우게 되었을까?’에 대한 답이 잘 짜여진 아트워크로 풀어내고 싶었다. 이런 요소가 플레이어들의 몰입도를 크게 높여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먼저 내러티브를 만들고 나서 이를 바탕으로 캐릭터의 비주얼을 더욱 구체화해나갔다.
요정은 사악한 몬스터 스피리드의 속삭임에 홀려 자신의 가족과 동료들을 죽이고 삶의 터전을 피로 물들이는 과오를 범하게 된다. 이러한 무거운 내러티브는 일반적인 요정 캐릭터가 가진 밝은 이미지와 상충된다. 설정에 맞도록 깊은 슬픔을 지닌 〈리니지W〉만의 요정을 외모에 담아내고 싶었다.
그 결과 요정은 슬라브족과 동양인의 얼굴을 섞은 형태로 구성해보았다. 내러티브에 적합하면서도 일률적이지 않고 개성 있는 매력을 표현하기 위해 일반적인 ‘게임의 미형’의 기준과 달리 접근하여 완성한 것이었는데 론칭 당시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외형에 대한 호불호가 있었던 터라 디렉터 입장에서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리니지 기본 클래스 군기마요 외에 새롭게 기획된 클래스는 기획 초반부터 발전시키는 과정이 더 지난했을 것 같다.
1주년 업데이트의 시그니처 클래스 ‘수라’는 메인 내러티브, 대표 무기 등 클래스를 구성하는 주요 특징을 설정하는 초기 기획 단계부터 아트팀의 제안과 아이디어가 적극적으로 반영됐다.
어릴 적 수라는 숙적의 태도(太刀)에 처참하게 쓰러져 죽어가는 아버지의 품 안에 있었다. 아버지의 모습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수라의 처참한 이야기를 담은 내러티브 인트로 영상을 통해 왜 수라가 태도를 들고 전장에 나서게 되었는지 개연성을 만들고자 했다. 기구한 과거를 품은 수라의 이야기에 태도라는 무기가 가진 이미지와 특성이 더해져 캐릭터의 멋과 개성이 살아났다.
이런 아트팀의 제안을 최홍영 PD가 긍정적으로 받아주었고, 담당 기획팀도 적극적으로 수용해준 덕에 최종 제작까지 진행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들이 〈리니지W〉의 아트워크가 더 풍성해지는 요소다.
몬스터도 내장이 드러난다든가, 벌레가 우글거린다든가 표현이 잔인하고 구체적인 부분이 부각되는 것 같다. 최근 공개된 뒤틀린 실렌도 그러하다. 몬스터 디자인의 수위 조절, 기준은 어떻게 잡는지 궁금하다.
좀비, 스켈레톤, 버그베어 등의 마물이 나오는 세계는 밝고 따뜻한 이미지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전반적으로 낮은 채도와 어둡고 무겁고 진지한 분위기를 유지하려다 보니 몬스터도 그런 톤에 맞아야 했다. 몬스터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디테일한 부분까지 잡아간다. 물론 심한 혐오감이나 거부감이 들 수 있는 형태는 지양한다.
〈리니지W〉는 리니지 원작에서 150년이 지났다. 서사도 당연히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150년 전에는 평화로워 보였던 하이네는 〈리니지W〉에서 거대한 해일로 마을 대부분이 폐허로 변했다. 이 부분에 아트의 의견이 많이 반영되었다고 들었다. 이처럼 아트 쪽 제안으로 변화된 부분이 있다면 알려달라.
새로운 클래스나 영지가 추가될 때면 기획 단계부터 내러티브, 아트 등에 관해 많은 회의를 거치면서 조율한다. 영지는 각 구역마다 특징에 맞는 양식을 차용했다. 예를 들어 하이네는 블루와 화이트 중심의 지중해 그리스 양식 느낌을 넣었고, 오렌 지역은 북부 슬라브 계열의 카자크족 중심으로 구성했다.
은기사 마을은 기본적으로 용을 잡는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라는 특징을 살려 입구에서 (용을 잡다가 죽은 사람들을 위한) 관을 짜는 사람을 볼 수 있고, 용 전리품, 바실리스크 통구이를 하는 모습 등이 마을 전반에 들어갔다.
은기사 마을 관 짜는 NPC 렌더링 및 인게임 이미지
방대한 스케일로 구현한 기란에는 특히나 다양한 장소를 배치했다. 기란 항구에서는 이곳 인근에서 잡히는 고래를 해체하거나 경매하는 주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축제의 광장이나 마을 입구에서는 음악을 연주하고 이를 구경하는 사람들, 투견장, 체스장 등을 볼 수 있다.
플레이어들은 사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공간이다. 이런 세세한 부분에도 내러티브가 살아 있는 재밌는 공간이 많으니, 게임할 때 이런 요소들에도 관심 갖고 봐주시면 좋겠다.
기란의 디테일한 여러 모습을 보니, 여기서부터 새로운 이야기를 이끌어낼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아트에서 파생된 퀘스트, 혹은 서사가 추가된 부분이 있는지 궁금하다.
화전민 이주지에 가면 버그베어가 마을 중심에 있는 큰 나무 앞에 묶여 있다. 이미 하신 분도 많겠지만, 이와 관련된 퀘스트가 있다. 아트를 토대로 기획이 들어간 대표적인 케이스다.
뽑기 연출도 아트 쪽의 제안으로 구성했다. 초기안에는 페일러 할아버지가 등장했으나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현재 형태로 완성됐다.
강화할 때 소위 ‘바른다’라고 표현하는데, 이 표현에 걸맞은 비주얼이 무엇일지도 고심했다. 그래서 여기에 적합한 이야기를 먼저 만들었다. ‘예전에 어떤 마법사가 주문서에 정령들을 심어두었고, 강화를 하면 이 정령들이 강화하는 무기나 방어구에 옮겨진다’는 것으로 이야기를 구성하니 쉽게 비주얼을 만들 수 있었다.
〈리니지W〉 아트 디렉터의 역할
한목소리로 이어질 수 있게 기준을 잡는 것
“AD는 말 그대로 아트 디렉터다.
만들고 싶은 비주얼 세계관을 명확히 한 다음,
처음부터 끝까지 한 게임을 일괄적으로 디렉션해야 한다.”
〈리니지W〉가 3년간 이어져오면서 절대 변하지 않는 아트의 기준이 있다면?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리니지W〉는 서양 중세의 모습을 참고 자료, 고증을 통해 실제와 유사하고 개연성 있게 구현하고자 했다. 또한 다른 서양 중세 판타지 게임이 가진 일반적인 아트 느낌은 지양하고자 했다.
화전민 이주지를 보면 오랜 전쟁과 폭정으로 살기 힘든 사람들이 모여든 곳이다 보니 다들 사연이 있다. 한쪽 다리가 의족인 촌장, 켈베로스를 해체해 나눠 먹으려는 사람들, 시체를 소각하는 사람들, 마을 곳곳에 목 매달려 죽은 사람들 등 화전민들의 생활상을 잘 반영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3년 동안 시류나 현재 유행하는 선호도에 맞춰 변화하지 않고 뚝심 있게 일관된 컨셉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온 것이 〈리니지W〉 아트의 기준이 아니었을까.
내러티브를 강조한다고 해서 모두가 선호하는 스타일의 아트가 나오지는 않을 것 같다. 〈리니지W〉만의 ‘멋진’ 아트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무엇이었을지 궁금하다.
그래서 고민한 부분이 ‘개성’이다. 멋진 아트는 ‘아름답고 예쁘게’가 기준이 될 수도 있겠지만 기존의 양산형 게임과 차별성을 두고 싶었다. 그래서 그 부분에 가장 집중했다.
사실 리니지가 쿼터뷰(아이소메트릭뷰) 게임이기도 하고, 퀄리티 자체는 최신 3D 게임에 비하면 좋다고 어필하긴 어렵다. 즉, 제약이 많다. 공중에 있는 어셋들을 일부러 바닥에 놓기도 한다. 원경을 표현하기 위해 깊이감이나 디테일로 해결하고 있다.
깊이감을 말씀하시니, 안타라스가 그런 예가 아닐까 싶다.
안타라스를 거대한 크기로 구현하기 위해 고민 끝에 협곡 끝에 배치했다. 그래야 그 크기를 어느 정도 크게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타라스가 등장할 때는 압도적인 스케일로 보일 수 있게 연출적 요소로 풀어냈다.
이번 아트북 이후 〈리니지W〉의 계획을 들려달라.
리니지의 오리지널 영지는 하이네로 끝났다. 이제 새로운 영지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다. 이를테면 밝은 천상계라든가 새로운 클래스라든가. 〈리니지W〉의 톤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그동안과는 다른 비주얼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앞으로도 방향성을 잃지 않고 W만의 비주얼을 만들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할 테니 지금처럼 많이 지켜봐주시길 바란다.
*「리니지W 아트북」의 이벤트 내용은 〈리니지W〉 홈페이지에서 확인해보세요.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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